공산당 서기 출신으로 라트비아 독립을 이끈 최고회의 의장
1991년 1월 14일, 쿠즈민 장군이 최고회의 의장에게 보낸 최후통첩은 단순했다. 라트비아가 채택한 법률들을 철회하라. 고르부노우스는 철회하지 않았고, 일주일 뒤 모스크바로 날아갔다.
라트비아 동부 루자 인근 필다에서 농민의 아들로 태어나 건설기술학교를 마치고 리가 공과대학과 모스크바 사회과학아카데미를 졸업했다. 라트비아 공산당 중앙위원회 서기(이념 담당)까지 올랐으나, 1988년 라트비아 인민전선의 출범을 지지하며 개혁파로 전환했고, 1990년 5월 4일 소련을 점령국으로 규정하고 독립 이행기를 개시한 최고회의 회기를 주재했다. 1991년 1월 바리케이드 시기 쿠즈민 장군의 최후통첩에도 물러서지 않았고, 1월 21일 모스크바로 날아가 고르바초프와 사태를 논의했다.
경력 연표
- 1959–1965기술자(니크라체 국영농장), 리가 농업공학연구소 직원, 소련군 복무
- 1970–1974리가 공과대학 선임강사, 키로프 구 콤소몰 제1서기
- 1974–1988라트비아 공산당 중앙위원회 여러 직책, 최종 이념 담당 서기
- 1988–1990라트비아 소비에트 최고회의 간부회의 의장
- 1990–1993라트비아 공화국 최고회의 의장, 독립 회복 후 국가원수 대행
- 1993–1995제5대 사에이마(국회) 의장
- 1995–2002부총리, 환경보호지역개발장관, 교통장관 역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