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바 미사일 위기의 비밀 설계자이자 바르샤바 조약군의 마지막 참모총장
아나디리 작전 초기 계획 단계에서 참모총국은 단 5명의 장교만 기밀로 삼았다. 서기 한 명에게도 노출되지 않도록 모든 계획 문서를 손으로 직접 작성했다.
소련군 최고사령부에서 냉전 시대를 관통한 군인이다. 1962년 작전명 '아나디리'의 초안을 작성한 참모 장교로서 쿠바 미사일 위기의 물리적 토대를 설계했으며, 이후 레닌그라드 군관구 사령관을 거쳐 1976년부터 1989년까지 바르샤바조약기구 연합군 참모총장을 지냈다. 퇴역 후에는 미·소 양측 장성이 함께 저술한 공동 회고록 『작전명 아나디리』(1994)를 통해 냉전 최대 위기의 내막을 공개하며 역사적 화해에 기여했다.
경력 연표
- 1939–1940제39경전차여단 전차소대장, 소련-핀란드 전쟁 참전
- 1941–1945참모총국 작전장교·대표, 서부·브랸스크·칼리닌·남부전선에서 종군
- 1960–1965참모총국 주작전국 작전국장 겸 부국장
- 1962아나디리 작전 계획 수립 및 쿠바 파견, 국방장관 대표
- 1965–1968제7근위군 사령관 (자캅카스 군관구)
- 1973–1976레닌그라드 군관구 사령관
- 1976–1989바르샤바조약기구 연합군 참모총장
- 1989–1992소련 국방부 감찰장군단
관련 역사 사건
아나디리 작전: 기획과 유산
1962년 5월, 흐루쇼프가 쿠바 배치를 결정한 직후 참모총국은 작전 계획 수립에 착수했다. 기획의 핵심에는 작전국장 아나톨리 그리브코프가 있었다. 보안을 위해 참모총국은 단 5명의 장교만 작전에 접근할 수 있도록 통제했고, 서기 한 명도 기밀이 새는 통로가 될 수 없다는 판단 아래 모든 계획 문서를 손으로 직접 작성했다. 작전명은 '아나디리'였다. 이는 시베리아 북동부의 강 이름을 차용해 북극 훈련으로 위장하려는 기만술이었다. 부대원들에게는 스키와 털외투를 지급하고, 수송선에는 세 겹의 봉인 명령서를 나눠주어 지브롤터를 통과하기 전까지 목적지를 알 수 없게 했다.
그리브코프가 입안한 계획은 85척의 수송선이 183차례 왕복하며 5만 명 이상의 병력과 230,000톤의 장비(R-12 및 R-14 중거리탄도미사일, 전술핵탄두 162기, Il-28 폭격기, MiG-21 전투기, 방공미사일, 해안방어 순항미사일)를 은밀히 수송한다는 내용이었다. 1962년 10월 위기 절정기에 그리브코프는 말리놉스키 국방장관의 개인 대표로서 쿠바에 파견되어 소련군 집단(42,000명)의 작전을 조율하고 미군 상륙 시 대응 계획을 감독했다.
냉전 종식 후인 1992년 1월, 아바나에서 열린 30주년 학술회의에서 그리브코프는 30년간 기밀로 묻혀 있던 사실을 폭로했다: 소련군의 전술핵무기가 이미 쿠바에 도착해 있었으며, 미군이 상륙했더라면 현지 지휘관이 모스크바의 승인 없이도 사용할 수 있는 상태였다는 것이다. 이 증언을 들은 로버트 맥나마라 전 미국 국방장관은 충격으로 탁자를 짚어야 했다. 그리브코프의 증언은 냉전 최대 위기가 알려진 것보다 훨씬 파국에 가까웠음을 세계에 처음으로 알린 역사적 순간이었다. 이후 그는 미·소 공동 회고록 『작전명 아나디리』(1994)를 미국 측 윌리엄 Y. 스미스 장군과 함께 집필하여 양측의 기록을 하나로 엮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