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드레이 안드레예비치 안드레예프

Андрей Андреевич Андреев
소련 벨라루스 1895–1971 ○ 자연사

20년간 정치국에 앉아 있던 조직의 사나이, 가장 자주 지방을 숙청하러 파견된 서기

1917년 4월 3일 밤, 레닌의 귀국을 맞은 핀란드역 집회에서 불과 서너 걸음 떨어진 자리에 앉아 이렇게 적었다: 「지하 볼셰비키 시절 우리가 얼마나 레닌을 보고 듣고 싶어 했던가. 마침내 그 꿈이 이루어졌다.」

스탈린 시대 내내 당 기구의 중추를 이룬 조직가. 13세에 모스크바 식당의 주방 소년으로 일을 시작했고, 노동자 야학에서 마르크스주의를 접한 뒤 1914년 볼셰비키에 입당했다. 정치국원(1932–1952)을 20년간 지내며 조직국을 실질적으로 운영했고, 중앙위 서기로서 대숙청 시기 지방 당 조직을 숙청하기 위해 가장 빈번히 파견된 인물이었다. 철도·농업 인민위원을 겸임하며 경제 부처도 두루 거쳤고, 전시에는 군수 수송과 부상병 구호를 총괄했으며, 1952년 청각 장애를 이유로 정치국에서 물러난 뒤에도 1962년까지 최고소비에트 간부회의 일원으로 남았다.

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

대숙청의 파견자 — '살인의 순회공연'

대숙청(1937–1938) 기간 동안, 지방 당 조직을 '검증'하고 간부들을 교체하기 위해 모스크바에서 고위 당 관료를 파견하는 것이 일반적인 관행이었다. 안드레예프는 이 임무에 가장 빈번히 동원된 중앙위 서기였으며, 사실상 조직국의 운영자로서 J. 아치 게티와 올레크 나우모프의 표현대로 "이 살인의 순회공연에서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주인"이 되었다.

1937년 6월에서 9월 사이에만 그는 보로네시, 첼랴빈스크, 스베르들롭스크, 쿠르스크, 사라토프, 쿠이비셰프, 타슈켄트, 스탈리나바트, 로스토프, 크라스노다르를 차례로 방문했다. 사라토프에 도착한 1937년 7월 20일, 그의 주요 표적은 지역 NKVD 수장 야코프 아그라노프였다. 아그라노프는 체포되어 총살되었고, 지역당 제2서기를 비롯한 간부들도 함께 숙청되었다. 동시에 안드레예프는 기계트랙터정비소 직원 20명을 "매우 방해되는 방식으로 일하고 있다"고 지목했고, 스탈린은 당일 전보로 이들 모두를 총살하라고 답신했다. 그의 사라토프 방문 결과 총 430명이 처형되었다.

쿠이비셰프에서는 지역당 서기 파벨 포스트이셰프에게 숨은 적 색출을 강화하라고 지시했고, 포스트이셰프는 대부분의 지역 당 지부를 해체하고 당원 3,300명을 체포했다. 연말이 되자 포스트이셰프가 지나쳤다고 판단되어, 안드레예프가 직접 부당하게 제명된 사람들의 명단을 수집하는 역설적인 임무를 맡았고, 포스트이셰프는 결국 체포·처형되었다. 타슈켄트에서는 우즈베크 공산당 창립자 파이줄라 호자예프를 비롯한 8명이 인민의 적으로 규탄된 지 나흘 만에 우즈베크당 제1서기 아크말 이크라모프가 당에서 제명되었고, 이어진 숙청으로 430명이 처형되었다. 스탈리나바트(타지키스탄)에서는 344명이 총살되었다.

니키타 흐루쇼프는 훗날 이렇게 회고했다: "안드레이 안드레예비치는 1937년 탄압 기간에 아주 많은 나쁜 일을 했다. 아마도 자신의 과거 때문에 전 트로츠키주의자들에게 온정적이라는 의심을 받지 않으려 했을 것이다. 그가 가는 곳마다 많은 사람이 죽었다." 안드레예프의 방문 때마다 그는 스탈린과 상시 전보 연락을 유지했고, 스탈린은 그가 추천한 제명·체포 명단을 예외 없이 승인했다.

1938년 말, 니콜라이 예조프가 내무인민위원에서 해임된 후 안드레예프는 NKVD 활동을 조사하는 정치국 위원회의 위원장을 맡았다. 이는 자신이 바로 그 테러 기관과 긴밀히 협력했던 인물이 이제 그 과잉을 '정리'하는 역할로 전환하는 아이러니한 장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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