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드레이 이바노비치 젤랴보프

Андрей Иванович Желябов
러시아 러시아 1851–1881 ✕ 처형

황제 암살을 조직한 인민의 의지당 실질적 지도자, 경찰 대열을 향해 당의 신념을 선포한 혁명가

「나는 인민 해방의 대의에 봉사해왔다. 이것이 내 유일한 직업이며, 나는 오랜 세월 전 존재를 바쳐 이에 헌신해왔다」 — 1881년 예심 조사에서.

농노 출신으로 인민의 의지당 집행위원회 실질적 지도자였다. 알렉산드르 2세 암살을 총괄 기획했고, 체포 이틀 뒤 암살이 성공했다. 법정에서 인민 해방의 신념을 선언한 뒤 1881년 4월 교수형에 처해졌다.

경력 연표

정치 강령과 조직 전략

젤랴보프는 '민중 속으로' 선전운동의 실패를 목도한 후, 전제정 자체를 목표로 삼는 정치 테러 노선의 수석 이론가로 전환했다. 1879년 6월 리페츠크 대회에서 그는 무장 투쟁과 중앙집권적 비밀결사라는 이중 원칙을 주창했고, 보로네시 대회에서는 '토지와 자유당' 내 테러 지지파의 핵심 논객으로 나섰다. 인민의 의지당 분열 이후 그는 당의 강령 문서 다수를 직접 기초했으며, 특히 1880년 가을 발행된 『노동자 신문』의 이념적 틀을 설계했다. 가장 주목할 업적은 '인민의 의지당 노동자 회원 강령'의 입안자로서, 그가 구상한 전제정 타도, 제헌의회 소집, 토지·공장의 인민 이양이라는 3단계 구도는 단순한 테러리즘을 넘어 정치혁명의 청사진을 제시한 것이었다. 그는 노동자·학생·군인 등 각 계층에 별도의 조직망을 구축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암살 계획과 지하신문·지방 세포 간 연계를 총괄하는 전국적 지휘체계를 설계했다. 이 구상은 당대 러시아 혁명운동에서 가장 정교한 조직론으로 평가된다.

재판과 처형 — 법정에 선 혁명가

1881년 2월 27일, 암살 실행 이틀을 앞두고 넵스키 대로의 하숙집에서 체포된 젤랴보프는 즉시 자신을 황제 암살 사건에 병합해 달라고 요구했다. 그는 "나는 인민 해방의 대의에 봉사해왔다. 이것이 내 유일한 직업"이라고 예심 조사에서 선언했다. 3월 26일 개정된 원로원 특별법정에서 젤랴보프는 변호인을 거부하고 스스로 변론에 나서, 평화적 선전 활동가들을 가혹하게 탄압한 정부야말로 혁명가들을 테러의 길로 몰아넣었다고 주장했다. 검사 니콜라이 무라비요프는 그를 "혁명적 야심가"라고 비난했으나, 법정에 선 젤랴보프의 당당한 태도와 정치적 논변은 러시아 사회에 깊은 인상을 남겼다. 4월 3일, 그는 페로프스카야·키발치치·리사코프·미하일로프와 함께 세묘놉스키 연병장에서 교수형에 처해졌다. 사형 집행 직전 페로프스카야와 주고받은 마지막 작별의 눈빛은 이후 수많은 혁명가들의 기억 속에 전설로 남았다. 레닌은 후일 젤랴보프를 로베스피에르, 가리발디와 같은 반열의 혁명가로 평가했으며, 유리 트리포노프의 소설 『인내』(1973)의 주인공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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