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서니 이든

Anthony Eden

전쟁과 탈식민화의 영국 외교가

1945년 샌프란시스코 회의에서 네 연합국 외무장관이 본회의 의장을 교대로 맡았고, 이든도 그 의장단에 포함됐다.

앤서니 이든은 제1차 세계대전 참전 경험을 바탕으로 국제연맹과 집단안보를 중시한 영국 보수 정치가였다. 그는 나치 독일과 파시스트 이탈리아의 부상 속에서 세 차례 외무장관을 지냈고,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윈스턴 처칠의 핵심 외교 보좌역으로 소련 및 연합국과의 전후 질서를 협상했다. 1945년 얄타 회담과 샌프란시스코 국제기구회의에서 영국을 대표하며 전후 국제기구 형성에 참여했지만, 총리 재임 중 수에즈 침공을 추진해 영국 제국의 한계와 미국 의존을 드러냈다.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

제3차 외무장관기: 제네바 회담과 서독 재무장, 1951~1955

1951년 보수당이 집권하면서 에덴은 세 번째로 외무장관에 취임했고, 처칠이 사실상 상징적 존재였던 만큼 영국 외교를 실질적으로 이끌었다. 이 세 번째 임기의 가장 두드러진 성과는 1954년 인도차이나 문제를 다룬 제네바 회담이었다. 미국이 반대하고 끝내 서명하지 않은 가운데서도 에덴은 협상을 통한 해결을 밀어붙였고, 그 회담의 성과는 그의 외무장관 재임 중 최고의 업적으로 평가된다.

같은 해 유럽방위공동체(EDC)가 프랑스 의회에서 부결되면서 서독 재무장 문제가 교착에 빠지자 에덴은 미국 국무장관 존 포스터 덜레스와 함께 돌파구를 찾았다. 영국은 EDC 6개국과 미국·캐나다를 런던 9개국 회담에 초청해 점령 체제 종료, 1948년 브뤼셀 조약을 개정한 서유럽연합(WEU) 창설, 서독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가입을 묶은 해법을 도출했다. 프랑스의 우려를 달래기 위해 영국은 유럽 본토에 4개 사단과 전술공군을 주둔시키고 다른 회원국의 반대가 있으면 철수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이 협상은 서구 진영 결속의 중요한 진전으로 평가되었고, 서독은 1955년 5월 NATO에 가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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