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토니오 바예호나헤라

Antonio Vallejo-Nájera

마르크스주의를 정신병으로 몬 프랑코 정권의 우생학자·정신과 의사

1938년 공화파 포로와 여성 수감자를 상대로 「붉은 유전자」를 찾는 연구를 벌였고, 그의 이론은 좌파 부모의 아이들을 빼앗는 근거가 되었다.

팔렌시아 파레데스데나바에서 태어난 군의관·정신과 의사. 1차 세계대전 때 베를린 주재 대사관에서 포로수용소를 시찰하며 크레펠린·크레치머 등의 독일 정신의학을 접했다. 1930년부터 시엠포수엘로스 정신병원을 이끌었다. 내전 중 프랑코군 정신의학 책임자로서 1938년 심리 연구소를 세워 국제여단 포로와 공화파 여성 수감자에게서 「마르크스주의의 생물·정신적 뿌리」를 찾았다. 『이스파니다드의 우생학과 민족 재생』(1937)에서 「붉은」 자녀를 부모에게서 떼어 놓자고 주장했다. 1947년 마드리드 대학 정신의학 교수가 되었고 1960년 숨졌다.

주요 활동과 소속

관련 역사 사건

「붉은 유전자」와 아이들

팔렌시아 파레데스데나바에서 태어나 바야돌리드 대학에서 의학을 공부했고, 군 의무대에 들어가 모로코 리프 전쟁에 참전했다. 1917년 베를린 주재 대사관의 군사 위원으로 포로수용소를 시찰했고, 그곳에서 에밀 크레펠린, 에른스트 크레치머, 한스 발터 그룰레, 구스타프 슈발베의 강의를 들으며 정신의학에 뜻을 굳혔다. 돌아와 1930년부터 시엠포수엘로스 정신병원을 이끌었다. 그는 독일 인종 위생 학설과 국가의 강제 우생 조치를 거부하는 가톨릭 교리를 조화시키려 했고, 결혼 전 남녀의 생물·심리적 평가에 기초한 「선택 혼인(에우가미아)」을 내세웠다.

나치즘에 공감한 그는 내전 중 프랑코군 정신의학 책임자로서, 공화국 시기에 스페인 민족이 퇴화했다고 썼다. 1938년 8월 23일 프랑코가 그의 요청으로 「마르크스주의의 생물·정신적 뿌리를 연구할」 심리 연구소를 허가하자, 그는 독일인 고문 둘을 포함한 팀으로 산페드로데카르데냐의 국제여단 포로와 말라가 여자 교도소의 공화파 수감자 50명(그 가운데 30명은 처형 대기 중이었다)을 시험해 이른바 「붉은 유전자」를 찾았다. 그는 공화파 여성의 「혁명적 범죄성」을 여성 심리의 동물적 본성과, 정치 환경이 「잠재된 성적 욕구」를 풀어 줄 때 드러나는 「뚜렷한 가학성」으로 설명했다.

『이스파니다드의 우생학과 민족 재생』(1937)에서 그는 「선택된 자를 늘리고 약한 자는 죽게 두는」 적극적 우생학을 주장했고, 『광기와 전쟁』에서는 마르크스주의자 부모에게서 자녀를 떼어 놓자고 했다. 이 이론은 공화파 아이들을 빼앗는 근거가 되어, 많게는 3만 명의 아이들이 좌파 가정에서 국민파 가정으로 옮겨졌다. 그는 전쟁의 공으로 스페인 정신의학의 중심인물이 되어 1947년부터 1959년까지 마드리드 대학 정신의학 교수를 지냈고, 1960년 2월 25일 마드리드에서 숨졌다. 그는 「스페인의 멩겔레」로 불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