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련 항공공업의 마지막 장관: 부란에서 민영화까지
부란 우주왕복선 기체 개발 당시, 시스초프가 주재하던 작전회의는 '시솝니키(сысовники)'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설계국들은 그의 무뚝뚝한 현장 감각을 두려워하면서도 존중했다.
멜레케스의 교사 가정에서 태어나 타슈켄트 항공공장 모터 조립공으로 시작해 수석 엔지니어까지 오른 현장형 관료였다. 1975년 울리야놉스크 항공산업단지 초대 총책임자로 거대 제조 기지를 건설했고, 1981년 항공공업 제1차관으로 부란 우주왕복선 기체 개발을 감독했다. 1985년 장관에 올라 MiG-29·Su-27·Tu-160·An-124 등 소련 항공기술의 최전선을 총괄했으며, 페레스트로이카기에는 항공공업부의 시장 전환을 주도했다. 공산당 중앙위원(1986~1990)과 최고회의 대의원을 지냈고, 소련 해체 후 러시아 항공산업 민영화를 이어갔다.
주요 활동과 소속
- 1948–1969 산업·생산 운영 · 소련 · 중공업 · 군수공업
경력 연표
- 1948–1969타슈켄트 항공공장: 모터 조립공 → 기술자 → 조립공장장
- 1969–1975타슈켄트 항공공장 수석 엔지니어
- 1975–1981울리야놉스크 항공산업단지(УАПК) 초대 총책임자
- 1981–1985소련 항공공업 제1차관
- 1985–1991소련 항공공업 장관
- 1991–1995ОАО «아비아프롬» 부사장
관련 역사 사건
부처에서 주식회사로: 항공공업부의 해체와 민영화
시스초프는 1981년 항공공업부 제1차관에 임명되었고, 그 직위에 있으면서 부란 궤도 우주선의 개발과 건조를 감독했으며 그 설계와 운영을 다루는 정기 작전회의를 소집했다. 이 회의는 설계국들 사이에서 '시솝니키'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그가 항공공업부 장관에 임명된 것은 1985년 11월 1일이었다. 무렵 이 부처는 소련 군수산업의 핵심 축이었고, 장관 재임기는 소련 항공산업이 팽창에서 해체로 방향을 바꾼 시기가 되었다.
페레스트로이카기에 시스초프는 시장경제 도입의 지지자로 나섰고, 항공공업부 자산의 비국유화와 민영화를 직접 추진해 부처를 국가기업(고스코르포라치야)으로 전환했다. 소련 해체 후에도 이 작업을 이어가며 소련제 항공기 판매 계약과 이스라엘·미국·남아프리카공화국 기업과의 합작사 설립을 시도했다. 1991~1995년에는 항공산업 협회 계열 ОАО «아비아프롬»의 부사장, 이후 부총책임자를 지냈다.
정책의 결과는 시스초프의 의도와 어긋났다. 1980년대 말 울리야놉스크 항공산업단지에는 3만 6천 명이 일했고 Ан-124 «루슬란» 60대 생산 계획이 세워져 있었지만, 소련 해체 직전 군 예산이 삭감되면서 국방부가 신형 Ан-124 구매를 중단했다. 대체 계획으로 Ту-204를 양산하는 전환(콘베르시야) 프로그램이 선포되었으나 단기간에 생산을 세울 수 없었고, 공장 집단은 사실상 일감을 잃었다. 민영화가 남긴 것은 부처의 통합 관리 체계를 대신할 시장도, 노동자들의 생계도 확보되지 않은 상태의 분할된 기업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