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그(MiG)의 아버지: '한순간'에 하늘을 지배한 전투기 설계자
스탈린이 물었다: "어떤 바보가 우리에게 비밀을 팔겠는가?" 그 바보는 영국 노동당 정부였다. 미코얀은 1946년 제트 엔진을 사러 런던으로 날아갔고, 롤스로이스 닌의 역설계가 곧 MiG-15의 심장이 되었다.
아르메니아 산골 마을 출신 선반공에서 소련 최대 전투기 설계국의 창립자로 거듭난 인물. 1939년 미하일 구레비치와 OKB-155(MiG)를 창설, MiG-15로 한국전쟁의 제공권을 장악하고 MiG-21이라는 사상 최다 생산 초음속 전투기를 내놓았다. 정치국원 아나스타스 미코얀의 동생이지만, 두 차례 사회주의노동영웅과 여섯 차례 스탈린상, 레닌상을 받으며 스스로 기술관료의 정점에 올랐다. 그의 설계국 항공기들은 55개 세계 기록을 수립했다.
경력 연표
- 1923–28로스토프·모스크바 «디나모» 공장 선반공
- 1931–37주콥스키 공군사관학교 졸업, 경비행기 «옥탸브료노크» 설계
- 1939–41OKB-155(MiG) 창설, MiG-1·MiG-3 전투기 개발
- 1946–53영국서 롤스로이스 닌 도입 → MiG-15; 한국전쟁 제트공중전 주도
- 1953–64MiG-17·MiG-19·MiG-21 — 초음속 전투기 시대로 이행
- 1956–68사회주의노동영웅 2회, 스탈린상 6회, 레닌상, 소련과학원 정회원
- 1964–70MiG-23·MiG-25·MiG-27 — 가변익·고속요격기 세대 설계
롤스로이스 닌 — 영국 엔진이 소련 제트 시대를 열다
1946년, 소련의 제트 엔진 기술은 서방에 크게 뒤처져 있었다. 독일에서 노획한 BMW 003과 Jumo 004의 복제품은 출력이 부족하고 신뢰성이 낮아, 공기역학적으로 우수한 신형 기체를 띄울 수 없었다. 항공공업인민위원 미하일 흐루니체프와 알렉산드르 야코블레프는 스탈린에게 영국에서 완성된 제트 엔진을 구매하자고 건의했다. 스탈린은 "어떤 바보가 우리에게 비밀을 팔겠는가?"라고 반문했지만 허락을 내렸다.
1946년 가을, 아르툠 미코얀과 엔진 설계자 블라디미르 클리모프가 롤스로이스 닌(Rolls-Royce Nene) 엔진을 구매하기 위해 런던으로 파견되었다. 이 원심식 터보제트 엔진은 당시 세계 최고 수준의 신뢰성과 출력을 자랑했다. 놀랍게도 클레멘트 애틀리의 노동당 정부와 친소 성향의 통상장관 스태퍼드 크립스는 기술 자료와 제조 라이선스를 기꺼이 제공했고, 실물 엔진 샘플과 청사진이 모스크바로 배송되었다.
클리모프는 닌을 역설계하여 RD-45(후일 VK-1)로 양산화했고, 미코얀의 OKB-155는 이 엔진을 장착한 후퇴익 전투기 I-310을 1947년 12월 30일 첫 비행시켰다. 이것이 MiG-15다. 1950년 11월 한국전쟁에 투입된 MiG-15는 직선익 제트기에 불과했던 미 공군 전투기들을 압도하며 '미그 앨리(MiG Alley)'라는 신조어를 낳았다. 롤스로이스는 훗날 2억 700만 파운드의 라이선스료를 청구했으나 끝내 받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