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나스타스 이바노비치 미코얀

Анастас Иванович Микоян
소련 아르메니아 1895–1978 ○ 자연사

소련의 식탁을 만든 사람. 그리고 「일리치에서 일리치까지」의 협상가

1942년 11월 6일 오후, 붉은 광장 로브노예 메스토. 탈영병이 스탈린의 차로 오인해 미코얀의 정부 차량에 세 발을 쐈다. 그는 한 점 상처 없이 걸어나왔다.

반세기 동안 소련의 먹고 사는 일을 관장한 실무의 거장. 식품공업인민위원으로서 1936년 두 달간 미국의 공장들을 시찰하고 돌아와 통조림·소시지·냉동식품 산업과 대량생산 아이스크림을 이식했고(「미코얀 커틀릿」이라는 이름이 붙은 것도 있다) 이후 수십 년간 대외무역과 소비재 공급을 맡았다. 정치에서는 1956년 헝가리 무력 개입에 거의 홀로 반대했고, 쿠바 위기 뒷수습으로 아바나에서 카스트로를 3주간 설득했다. 「일리치(레닌)에서 일리치(브레즈네프)까지」 최고 지도부를 통과하고 은퇴를 「허락받은」 드문 거물.

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

1936년 미국 시찰 — 소련의 식탁을 바꾼 여행

1936년 여름, 아나스타스 미코얀은 2개월간 미국을 시찰했다. 소련 식품공업인민위원으로서 그는 뉴욕, 시카고, 디트로이트를 돌며 통조림 공장, 냉동 식품 라인, 자동판매기, 햄버거 생산 공정을 샅샅이 살폈다. 그는 아이스크림 대량생산 기술과 냉동 패티 공법을 소련에 들여왔다.

이 여행의 결과로 소련에 도입된 것들: 아이스크림 공장, 코카콜라의 소련판, 햄버거(당시에는 '미코얀식 커틀릿'), 냉동식품. 미코얀은 소련인의 식탁을 혁명적으로 바꾸었지만, 그것은 바로 자본주의의 소비문화에서 배운 것이었다.

미코얀의 정치적 생존력은 전설적이다. 레닌 시대부터 브레즈네프 시대까지, 그는 누구보다 오래 살아남았다. 스탈린의 가장 가까운 측근이었으면서도 1956년 헝가리 진압을 반대했고, 쿠바 미사일 위기 때는 흐루쇼프와 케네디의 백채널 역할을 했다. 미코얀의 생존 비결은 적응력 — 그리고 언제나 필요한 것을 생산하는 실용주의였다.

← 카드로 돌아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