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스카르 아카예비치 아카예프

Аскар Акаевич Акаев

개혁의 얼굴에서 장기 집권자로 변한 과학자 대통령

1991년 8월 26일 최고회의에서 아카예프는 신연방조약 초안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선언하고 국가연합을 요구했다.

물리학자이자 키르기스 공화국 과학아카데미 출신의 정치가인 아카예프는 당 관료가 아니었던 인물로서 1990년 공화국의 첫 대통령에 선출되었다. 그는 소련 말기의 민족 갈등과 주권 요구 속에서 다당제와 시장 개혁을 내세웠고, 1991년 쿠데타를 신속히 비판하며 키르기스스탄의 독립을 이끌었다. 노보오가료보 협상에서도 공화국의 주권을 중시해 8월 조약 초안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하고 국가연합에 가까운 수정을 요구했다. 그러나 재임 후반에는 대통령 권한의 연장과 가족·측근 중심의 통치, 부패 의혹이 커졌고 2005년 대중 봉기로 실각했다.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

2005년 이후: 망명과 모스크바에서의 학자 생활, 그리고 쿰토르 귀환

2005년 3월 24일 대통령궁이 시위대에 장악되자 아카예프는 가족과 함께 카자흐스탄을 거쳐 러시아로 피신했고, 블라디미르 푸틴이 그의 러시아 체류를 허가했다. 일부 보도는 그가 출국 전에 사임 의사를 전달했다고 전했으나, 정식 사임은 4월 4일 러시아에서 키르기스스탄 의원 대표단을 만난 자리에서 이루어졌다. 의회는 4월 11일 이 사임을 받아들였다.

러시아 체류 중 그는 모스크바국립대학교 교수로 복귀해 프리고진 복잡계 수리연구소의 선임연구원으로 일했고, 안드레이 코로타예프 등과 함께 러시아 과학아카데미의 '세계 역학 체계 분석 및 수리 모델링' 프로그램을 조정했다. 2006년 5월에는 정보기술 및 컴퓨팅 시스템 분야에서 러시아 과학아카데미 외국인 정회원으로 선출되었고, 2014년부터는 모스크바 고등경제대학의 사회정치적 불안정 리스크 모니터링 연구실을 이끌었다. 2023년 8월에는 러시아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키르기스스탄이 러시아를 지지해야 한다고 발언하기도 했다.

한편 키르기스스탄에서는 그에 대한 사법적 압박이 이어졌다. 2006년 검찰은 그의 측근과 가족을 상대로 100건이 넘는 형사 사건이 진행 중이라고 밝혔고, 2010년 8월에는 그가 중국과 카자흐스탄에 키르기스스탄 영토를 넘겼다는 등의 혐의로 면책 특권과 전직 대통령 지위를 박탈당했다.

2021년 7월 그는 쿰토르 금광 스캔들에 연루된 혐의로 수배 대상에 올랐고, 같은 해 8월 16년 만에 비슈케크를 방문해 조사에 협조했다. 2021년 12월과 2023년 1월에 걸쳐 그에 대한 형사 사건은 종결되었다. 2023년 2월 사디르 자파로프 대통령의 주선으로 역대 대통령들이 한자리에 모였고, 그는 이 자리에서 자파로프 및 다른 전직 대통령들과 악수를 나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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