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브라아미 파블로비치 자베냐긴

Авраамий Павлович Завенягин
소련 러시아 1901–1956 ○ 심장마비

마그니토고르스크에서 노릴스크, 원자폭탄까지, 스탈린 시대 산업 건설의 전방위 조직자

「자베냐긴은 강인하고 결단력 있으며 지나치리만치 주도적인 책임자였다. 과학자들의 의견을 잘 경청했고 그들의 역할을 이해하려 애썼다. 의심할 여지 없이 대단한 지성을 지닌 사람이었으며 — 동시에 완전히 스탈린주의적 신념을 가진 사람이었다」 — 안드레이 사하로프

광산공학을 전공한 기술관료로, 마그니토고르스크 제철소장을 거쳐 노릴스크 광산·금속 콤비나트를 굴라그 노동력으로 건설했다. 전쟁 중 NKVD 부인민위원으로 산업건설 총국들을 지휘했고, 1945년부터 원자폭탄 계획의 제1부책임자로서 우라늄 탐사, 독일 과학자 영입, 폐쇄도시 건설, 최초 핵실험 조립을 진두지휘했다. 스탈린 사후 베리야 몰락을 견디고 중형기계공업 장관 겸 부수상으로 핵산업을 관장했다.

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

원자폭탄 계획의 실무 총괄자

자베냐긴은 1943년부터 우라늄 문제에 관여했고, 1944년 12월 국방위원회 결정으로 소련 전역과 점령지에서의 우라늄 탐사를 총괄하게 되었다. 이를 위해 NKVD 제9총국이 편성되었다. 1945년 8월 특별위원회가 출범하자 그는 제1총국(PGU) 제1부책임자로 임명되어 특수수용자 노동력 관리, 광산·선광·야금 시설 건설, 과학기술 인력 충원을 책임졌다. 같은 해 그의 지휘 아래 독일의 핵물리학자·화학자·야금학자 70여 명이 소련으로 이송되었고, 1948년까지 300명 이상으로 늘어난 이들은 '독일 연구소'에서 농축우라늄과 금속플루토늄 생산 기술을 개발했다. 동시에 소련 통제 구역 전역에서 우라늄 원광과 반제품을 압수·수집하여 1946년 중반까지 순우라늄 환산 220톤을 확보했다.

자베냐긴은 마야크(첼랴빈스크-40), 아르자마스-16, 크라스노야르스크-26 등 폐쇄도시와 공장 부지 선정 및 건설을 직접 지휘했다. 1948년 6~7월에는 쿠르차토프와 함께 원자로 A-1의 두 차례 사고 수습을 현장에서 지휘하며 과다 피폭되었다. 1949년 8월 19일 RDS-1 핵탄두를 KB-11에서 세미팔라틴스크 실험장까지 운송하고 최종 조립을 총괄하는 책임자로 지정되었으며, 8월 29일 밤 그의 입회 아래 중성자 기폭장치가 탄체 중심부에 삽입되었다. 실험 직후 그는 차량으로 폭심지까지 진입했다가 방사성 먼지에 차가 멈추는 바람에 도보로 귀환해야 했고, 이때 치명적인 방사선량을 흡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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