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야즈 니야지 오글루 무탈리보프

Ајаз Нијази оғлу Мүтәллибов
소련 소련 공산주의 아제르바이잔 아제르바이잔인 1938–2022

연방 재편과 독립 사이에 선 마지막 소비에트 지도자

연방은 공화국을 위해 존재해야 한다는 관점에서 신연방조약을 지지했다.

아야즈 무탈리보프는 소비에트 아제르바이잔의 관료에서 공화국의 마지막 공산당 지도자이자 초대 대통령으로 올라선 정치가였다. 1991년 노보오가료보 9+1 회의에서 그는 공화국의 주권을 보장하는 새로운 연방을 지지하며, 연방은 공화국을 위해 존재해야 한다는 관점을 내세웠다. 자치공화국의 지위와 권한을 둘러싼 협상에도 적극 참여했지만, 카라바흐 전쟁과 국내 권력투쟁 속에서 통치 기반을 잃었다. 1992년 축출된 뒤 모스크바에서 망명 생활을 하다가 2012년 귀국했고 2022년 바쿠에서 사망했다.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소련 정치국

1991.11 당 활동 금지까지 재임

관련 역사 사건

공장 관리자에서 공화국 기획 수장으로

무탈리보프는 정당 간부가 아니라 생산 현장의 기술 관료로 출발했다. 1938년 바쿠에서 태어나 1962년 아제르바이잔 석유화학연구소를 졸업한 뒤 수석 설계기사로 일했고, 바쿠 냉장고·가전 공장의 설계국장과 총기사를 거쳐 1966년 공장장, 1974년에는 냉장고·가전 생산연합의 총지배인이 되었다. 1963년 소련공산당에 입당했고, 이 시기 그는 공화국 산업의 1선에서 관리와 기술을 함께 다루는 인물이었다.

1977년 나리마노프 구당위원회 제2서기로 당 사업에 들어선 뒤 1979년 공화국 지방산업부 장관, 1982년 국가계획위원회(고스플란) 위원장 겸 각료회의 부의장을 지냈다. 고스플란 수장으로서 그는 공화국 경제 계획의 중심에 섰고, 1989년 1월에는 각료회의 의장, 곧 정부 수반이 되었다. 같은 해 1989년부터 1991년까지는 쿠바틀린 선거구에서 소련 인민대의원을 지냈다.

그의 당 최고직 진출은 1990년 1월의 바쿠 사건과 맞물려 있었다. 1990년 1월 19~20일 밤 소련군이 바쿠에 진입해 시위를 진압했고(‘검은 1월’), 그로부터 며칠 뒤인 1월 24~25일 공화국 공산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정부 수반이던 무탈리보프가 제1서기로 선출되었다. 이듬해 5월 18일에는 최고회의가 그를 아직 소련에 속해 있던 아제르바이잔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의 대통령으로 선출했다. 즉 그는 공화국 산업과 계획 체계의 실무 관료에서, 독립을 몇 달 앞둔 시점의 공화국 최고 지도자로 이동하는 경로를 걸었다. 이 경로는 이후 연방 개편과 독립 사이에서 그가 취한 입장의 배경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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