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에티오피아사를 연구한 역사가
그는 더그의 구성원을 120명으로 보는 통설에 반대하여, 실제로는 110명 미만이었고 고위 장교는 배제되었으며 새 구성원은 받지 않았다고 기록했다.
현대 에티오피아사를 연구하는 역사가이자 저술가로, 아디스아바바 대학 명예교수다. 하일레 셀라시에 1세 대학에서 역사학을, 런던 대학에서 아프리카사를 공부했고, 역사학과장과 에티오피아 연구소장을 지냈다. 1855~1991년을 다루는 에티오피아 현대사 표준 개설서를 썼으며, 사회연구포럼 창립 회원으로 활동했다.
주요 활동과 소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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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연구대표
경력 연표
- 1947아디스아바바에서 출생
- 1970하일레 셀라시에 1세 대학 역사학 학사(우등)
- 1976런던 대학 아프리카사 박사
- 1991에티오피아 현대사 1855~1991 간행
- 1998–2004사회연구포럼 이사회 의장
관련 역사 사건
학생운동사 복원과 ‘민족문제’
제우데의 연구는 더그 정권 자체보다 그 정권을 낳은 운동의 역사로 향했다. 2010~2011년 베를린 과학대학(Wissenschaftskolleg)에서 그는 ‘에티오피아 학생운동사, 1960~1974’라는 연구과제를 수행했다. 그는 이 운동이 자기의식과 개량주의, 혁명적 헌신이라는 단계를 거쳤으며,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군주제 가운데 하나의 전복과 이후의 사회주의 건설 정책, 그리고 현재의 민족 연방제 실험이 모두 이 운동으로부터 거슬러 올라간다고 보았다. 그런데 1974년 이후 상황을 다룬 대부분의 평가는 이 배경에 대한 이해를 갖추지 못했다는 것이 그가 제기한 문제의식이었다.
방법론에서도 그는 구술 자료를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학생운동 관련 문헌과 국내외 학생회 간행물을 검토하는 한편, 옛 학생 지도자와 활동가 스무 명 남짓을 모아 나흘에 걸친 집단 회고 작업을 조직했고, 이를 채록·편집해 방대한 1차 자료로 만들었다. 이 자료는 학생 활동의 무해한 출발, 1960년대 초의 급진화, 현대 에티오피아 정치의 핵심 쟁점인 ‘민족문제’의 발생과 전개, 학생 조직이 좌파 정당으로 발전하는 과정을 다룬다.
그가 정리한 두 쟁점은 토지개혁과 민족문제였다. 1965년 ‘쟁기질하는 자에게 토지를’ 구호로 시작된 학생들의 캠페인은 소작제의 폐지를 요구했고, 이는 1975년 농촌 토지 선언으로 귀결되었다. 민족문제 논쟁은 1969년 북미 에티오피아 학생연합(ESUNA) 제17차 대회에서 처음 제기되어, 1971년 유럽 학생연합 제11차 대회와 ESUNA 제19차 대회에서 민족의 자결권, 나아가 분리까지의 권리를 인정하는 입장으로 정리되었다. 그는 이 입장이 학생운동에서 나온 모든 좌파 정당에 채택되었고 1994년 에티오피아 연방민주공화국 헌법에 명문화되었다고 짚었다. 그의 운동사 저작은 더그의 구성원 수를 둘러싼 통설을 교정한 작업과 함께, 혁명의 기원을 문서와 증언으로 재구성하려는 시도의 일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