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사극과 '낯설게 하기'로 연극을 계급투쟁의 무기로 만든 마르크스주의 극작가
내가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읽었을 때, 나는 비로소 내 희곡들을 이해했다 — 마르크스야말로 내 희곡의 유일한 관객이었다.
베르톨트 브레히트는 20세기 가장 중요한 마르크스주의 극작가이자 서사극의 창시자였다. 1920년대 후반 마르크스주의를 수용한 후, 감정적 몰입을 거부하고 관객의 비판적 성찰을 이끌어내는 '낯설게 하기'와 변증법적 연극론을 정립했으며, 《서푼짜리 오페라》·《억척어멈과 그 자식들》·《사천의 선인》 같은 작품들로 자본주의와 전쟁을 무대 위에서 해부했다. 1933년 나치를 피해 스칸디나비아와 미국에서 망명 생활을 했고, 1947년 HUAC 조사 후 유럽으로 돌아와 1949년 동베를린에 헬레네 바이겔과 함께 베를리너 앙상블을 창립해 전후 세계 연극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 1922『밤의 북소리』로 클라이스트 상 수상
- 1924베를린으로 이주, 도이체스 극장 연극부 조수
- 1928『서푼짜리 오페라』 초연, 1920년대 베를린 최대 흥행작
- 1933나치 독일을 떠나 15년간의 망명 시작
- 1947할리우드에서 HUAC에 증언, 다음날 미국을 떠남
- 1949헬레네 바이겔과 동베를린에 베를리너 앙상블 창립
- 1954스탈린 평화상 수상
덴마크 망명과 스벤보르의 협업 공동체
브레히트는 나치 집권 뒤 독일을 떠나 1933년 덴마크 남부 스벤보르 외곽 스코우스보스트란의 초가지붕 집에 정착했다. 12월 22일 그는 발터 벤야민에게 편지를 보내, 방문에 앞서 벤야민의 도서관을 덴마크로 보내라고 제안했다. 편지에는 아내 헬레네 바이겔이 전한 생활비와 시립 도서관, 라디오·신문·카페 같은 실용적 조건이 담겼다. 이 집과 지역은 바이겔, 벤야민, 극작가 마르가레테 슈테핀을 비롯한 독일어권 망명 동료들의 협업 공간이 되었으며, 덴마크 소설가 카린 미카엘리스가 이 공동체의 기반을 제공했다. 덴마크 배우·사진가 루트 베를라우 등 동료들이 오가며 교류했다.
이 시기 브레히트의 작업은 망명 공동체의 일상과 반파시즘적 글쓰기를 함께 아우른다. 그는 1933~1939년 반나치 잡지 《다스 보르트》를 공동 편집했고, 나치 독일의 일상을 다룬 《제3제국의 공포와 참상》을 비롯해 연극과 시를 썼다. 1937~1938년 스벤보르에서 시집 《스벤보르 시편》을 엮었고, 이 시집은 1939년 출간되었다. 전쟁이 임박하자 1939년 스톡홀름으로 옮겼고, 1940년 헬싱키를 거쳐 미국행 비자를 기다렸다. 덴마크에서의 망명은 그의 집필을 끊지 않았으며, 동료들과의 협업 및 지적 교류가 이어진 구체적인 생활 기반을 마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