됭케르크 철수를 조직한 해군 지휘관
도버성 아래 지휘부에서 램지와 참모들은 됭케르크 철수를 9일 밤낮으로 조정했다.
베르트람 램지는 영국 해군 장교로, 전시 해상작전을 조직하고 지휘하는 능력으로 두각을 보였다. 1940년 됭케르크에서 그는 군함과 민간 선박을 동원해 포위된 영국·연합군 병력의 철수를 지휘했다. 이후 북아프리카와 시칠리아 상륙작전을 거쳐 1944년 노르망디 상륙작전의 연합군 해군 총지휘를 맡았다. 그는 1945년 프랑스에서 비행기 추락으로 사망했다.
다른 이름: 버트람 홈 램지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 1898영국 해군에 입대
- 1915–1919모니터함 M25 및 구축함 HMS 브로크 지휘, 도버 순찰대 복무
- 1933–1935전함 HMS 로열 소버린 함장
- 1939–1942도버 지휘관, 해협 방어와 됭케르크 철수 담당
- 1942북아프리카 침공 부해군 총사령관
- 1943시칠리아 침공 동부 기동부대 해군 지휘관
- 1944노르망디 상륙작전 연합군 해군 총사령관
관련 역사 사건
도버 사령부와 해협 방어, 1939~1942
램지는 1938년 해군에서 퇴역했으나 이듬해 처칠의 요청으로 복귀했고, 중장으로 진급해 1939년 8월 24일 도버 사령관에 임명되었다. 사령관으로서의 임무는 독일 구축함의 습격에 대한 방어, 해협을 건너는 군사 수송의 보호, 도버 해협을 통한 잠수함 통과 저지였다. 됭케르크 철수 작전을 마친 뒤에는 독일의 침공이 예상되는 도버 앞바다를 지키는 막대한 문제에 직면했고, 약 2년 동안 독일군에 맞서 해협 통제권을 유지하려는 부대를 지휘하며 두 번째 전공 언급을 받았다. 1942년 2월 독일 전함 샤른호르스트와 그나이제나우가 호위함과 함께 해협을 통과했을 때 그는 지휘관이었다. 영국군은 이에 대비한 작전(풀러 작전)을 세워 두었으나 기습을 당해 저지에 실패했다. 같은 해 4월 29일 유럽 상륙작전의 해군 사령관으로 임명될 예정이었으나 상륙이 연기되면서 북아프리카 상륙작전의 부해군사령관으로 전임되었고, 1943년 시칠리아 상륙작전에서는 동부기동부대 해군지휘관으로 상륙을 준비했다. 이 시기 그의 지휘는 1944년 노르망디 상륙작전의 연합군 해군 총지휘로 이어지는 조직·기획 경험의 축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