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명의 수장을 거쳐 이십칠 년을 집행한 사형집행인
1940년 4월, 블로힌은 가죽 앞치마와 어깨까지 오는 장갑을 갖추고 칼리닌 NKVD 지하실에서 28일 밤 동안 폴란드 포로 약 7천 명을 3분에 한 명꼴로 직접 사살했다.
NKVD 사령부장으로 27년간 루뱐카의 사형을 집행한 소련의 사형집행인. 야고다·예조프·베리야를 거치며 대숙청 희생자를 처형했고, 1940년 카틴 학살 시 칼리닌 처형팀을 지휘했다.
경력 연표
- 1926–1953NKVD·MGB 행정경제국 사령부장, 사실상의 사형집행 책임자
- 1937–1938대숙청기 처형 집행과 감독
- 1940칼리닌 처형팀 지휘(카틴 작전)
- 1953–1954퇴역, 이어 계급 박탈
관련 역사 사건
카틴 학살과 칼리닌 처형 작전
1940년 4월, 스탈린은 비밀 명령을 통해 폴란드 침공 후 포로가 된 폴란드 장교·경찰·지식인 약 2만 2천 명의 처형을 승인했다. 이 중 오스타시코프 수용소에 억류된 약 7천 명은 칼리닌(현 트베리) NKVD 본부 지하에 특별히 건설된 처형실로 이송되었다. 임무는 블로힌에게 직접 배정되었다.
블로힌은 하루 300명 처형이라는 목표를 세우고 능률적인 시스템을 설계했다. '레닌주의자 방'이라 불린 붉게 칠해진 대기실에서 신원을 확인한 뒤, 포로들은 수갑을 찬 채 옆방으로 끌려갔다. 그 방은 방음을 위해 벽에 패딩이 씌워져 있었고, 바닥은 배수구가 있는 경사 콘크리트로 되어 있었다. 블로힌은 가죽 정육점 앞치마와 가죽 모자, 어깨까지 덮는 가죽 장갑을 착용하고 문 뒤에서 기다렸다. 그는 소련제 TT-30 권총의 내구성을 신뢰하지 않아 독일 발터 모델 2 권총이 담긴 서류가방을 직접 가져왔다. 독일제 권총 사용은 시신이 발견될 경우 소련의 개입을 부인할 수 있는 장치이기도 했다.
포로들은 재판도, 형 선고도 없이 한 명씩 들여보내졌고, 블로힌은 뒤통수에 한 발씩 쏘았다. 매일 밤 10시간 동안 작업은 계속되었고, 블로힌은 평균 3분에 한 명을 처형했다. 약 30명의 현지 NKVD 요원들이 포로 호송, 신원 확인, 시신 운반, 바닥 청소를 담당했다. 시신은 덮개 트럭에 실려 메드노예 마을 인근으로 옮겨졌고, 매일 밤 24~25개의 참호를 파서 처형된 시신을 매립했다. 블로힌은 밤이 끝나면 부하들에게 보드카를 제공했다.
28일 밤 동안 약 7천 명을 직접 사살한 이 작전은 기록상 단일 개인에 의한 가장 조직적이고 장기적인 대량 살인으로 남았다. 4월 27일 블로힌은 이 '특별 임무' 수행에 대한 보상으로 비밀리에 적기훈장과 월급 인상을 받았다. 소련은 이후 이 학살을 나치 독일의 소행으로 은폐했으며, 이 주장은 냉전기 내내 공식 입장으로 유지되었다. 1990년 고르바초프가 글라스노스트의 일환으로 카틴 관련 문서를 폴란드 정부에 넘기면서 스탈린의 책임이 공식 확인되었고, 블로힌의 역할도 비로소 드러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