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대회의 이스크라 다수파, 감옥에서 스러진 캅카스 볼셰비키 선구자
1905년 3월 모스크바 법정에서 차르 체제를 정면으로 고발하는 연설을 했다. 유형지에서 탈출한 후에도 바쿠 지하로 돌아갔고, 결국 바일로프 감옥에서 숨을 거두었다.
나고르노-카라바흐 출신의 아르메니아계 볼셰비키. 1897년 '노동계급 해방 투쟁 동맹'에 가입하고 1901년 바쿠로 유배된 후 캅카스 사회민주주의의 중심 인물이 되었다. 1902년 스테판 샤우먄과 '아르메니아 사회민주주의자 연맹'을 공동 창립했고, 1903년 RSDLP 제2차 대회에서 이스크라 다수파로 서며 볼셰비키-멘셰비키 분열의 현장에 섰다. 1905년 페테르부르크 소비에트 위원, 종신 유형 후 탈출해 슈투트가르트 제2인터내셔널 대회에 참석했다. 바쿠 지하로 돌아와 활동하다 1910년 체포되어 바일로프 감옥에서 32세로 사망했다.
주요 활동과 소속
- 1902– 사회운동·조직
경력 연표
- 1896페테르부르크 공과대학 입학
- 1897'노동계급 해방 투쟁 동맹' 가입
- 1901바쿠로 유배, RSDLP 바쿠·캅카스 연합위원회 위원
- 1902스테판 샤우먄 등과 '아르메니아 사회민주주의자 연맹' 공동 창립
- 1903RSDLP 제2차 대회 바쿠 대의원 — 이스크라 다수파(볼셰비키)
- 1904–1905모스크바에서 체포, 재판에서 반차르 연설; 페테르부르크 소비에트 위원
- 1905.12체포되어 종신 유형 선고
- 1907유형지 탈출, 슈투트가르트 제2인터내셔널 대회 및 헬싱포르스 RSDLP 제4차 협의회 참석
- 1907–1910바쿠 지하 활동
- 1910.09체포, 바일로프 감옥 수감
관련 역사 사건
1905년 페테르부르크 소비에트와 유형
1904년 2월 모스크바에서 체포된 크누냔츠는 1905년 3월 재판에서 차르 체제를 비판하는 연설을 했다. 그해 9월 페테르부르크로 돌아와 러시아 사회민주노동당 페테르부르크 위원회와 페테르부르크 노동자 대표 소비에트에서 활동했다. 12월 다시 체포되어 종신 유형을 선고받았으나, 1907년 해외로 탈출했다. 그는 슈투트가르트에서 열린 제2인터내셔널 대회와 헬싱포르스의 러시아 사회민주노동당 제4차 협의회에 참석한 뒤 바쿠로 돌아가 지하활동을 재개했다. 이 시기는 혁명운동의 도시 조직 활동이 체포와 유형으로 중단되었지만, 탈출과 해외 회의 참가를 거쳐 바쿠의 지하활동으로 이어진 경로를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