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민지 군 경력과 전쟁 초기 지휘 실패를 함께 지닌 장성
1950년 6월 28일 새벽, 그의 명령으로 한강교가 폭파되었다.
채병덕은 일본군 장교 경력을 거쳐 해방 뒤 대한민국 군대의 창설과 확대에 참여한 장성이다. 1950년 6월 한국전쟁이 시작되었을 때 육군참모총장으로서 전방 경계와 지휘를 제대로 조직하지 못했고, 서울 철수 과정의 한강교 조기 폭파 명령에도 책임이 있었다. 개전 직후 해임된 그는 경남 방어전선에 투입되었고, 7월 하동 전투에서 전사했다.
경력 연표
- 1937일본 육군사관학교 졸업, 일본군 포병 장교 임관
- 1940–1945일본군 포공학교 교관, 육군 조병창 공장장
- 1946군사영어학교 졸업, 남조선국방경비대 제1연대장
- 1948통위부 참모총장, 국방부 합동참모총장
- 1949제2대 육군총참모장
- 1950.04–06.30제4대 육군총참모장 겸 육해공군총사령관
- 1950.06.30–07.27경남 지구 편성군 사령관, 하동 전투에서 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