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스 E. 유스티스 볼렌

Charles E. Bohlen
미국 국가기관 미국 미국 1904–1974 ○ 췌장암

케넌과 클레이턴의 정책 메모를 마셜의 하버드 연설문으로 옮긴 국무부 소련 전문가

「포츠담 이후, 소련이 세계 공동체의 합리적이고 협력적인 구성원이 되도록 유도하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었다」, 회고록 『역사의 증인』에서.

미국 외교관이자 소련 전문가로, 1934년 주소 미국대사관 개설부터 냉전기까지 미소관계의 거의 모든 중대한 장면에 입회했다. 루스벨트와 트루먼의 통역으로 테헤란·얄타·포츠담 회담에 배석했으며, 1947년 마셜 국무장관의 요청으로 케넌과 클레이턴의 정책 메모를 하버드 졸업식 연설문으로 작성해 마셜 플랜의 공개적 출발을 이끌었다. 1953년 주소 대사로 임명되었으나 매카시의 공격을 받으며 인준 청문회를 겪었고, 이후 프랑스 대사까지 지내며 '현자들'로 불린 초당파 외교 고문 중 한 사람으로 활동했다.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

1939년 8월, 비밀 의정서가 워싱턴에 전달되기까지

1939년 8월 24일 아침, 주소 미국대사관 근무 중이던 볼렌은 독일 대사관의 한스 폰 헤르바르트에게서 전날 서명된 몰로토프-리벤트로프 조약의 비밀 의정서 전문을 넘겨받았다. 의정서는 히틀러와 스탈린이 중부 유럽과 발트 3국, 핀란드를 독일과 소련의 세력권으로 나누기로 한 합의를 담고 있었다. 볼렌은 즉시 이를 워싱턴에 타전해 루스벨트 대통령에게 보고되었지만, 미국은 이 정보를 관련국 어느 정부와도 공유하지 않았다. 일주일 뒤 독일과 소련의 폴란드 침공으로 제2차 세계대전이 시작되었다. 이 사건에서 볼렌은 소련 전문가로서 정보의 최전선에 서 있었고, 동시에 그 정보가 정책으로 이어지지 못한 한계도 함께 드러냈다. 비밀 의정서의 존재가 뉘른베르크 재판에서 공개될 때까지 공식적으로 입증되지 않았다는 점에서도 이 첩보는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사료들은 1939년 당시 볼렌의 직위를 구체적으로 확정하지 않는다. 그는 1934년 주소 미국대사관 개설 당시 참사관급 직원으로 합류해 조약 서명 무렵에도 모스크바에서 근무하고 있었고, 그러한 정보가 미국 측에 들어오는 창구에 있었다. 따라서 당시의 공식 직함을 하나로 단정하기보다 대사관의 대소 정보 창구 역할을 기록하는 것이 타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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