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공안위원회 위원으로, 체포된 로셀을 탈출시키고 함께 달아난 코뮌 의원
1843년 오랭의 생루이에서 간접세 감독관의 아들로 태어나 태피스트리 공장의 외판원으로 일했다. 파리 포위 중 국민방위대 대대장으로 뽑혔고, 20개 구 공화주의 중앙위원회 위원이 되었다. 1871년 1월 7일 「붉은 포스터」에 서명했고, 3월 26일 17구에서 코뮌 평의회 의원으로 당선되어 공안위원회와 대외관계위원회에서 일했다. 5월 1일 첫 공안위원회 위원이 되었다. 공안위원회의 명령으로 친구 루이 로셀이 체포되자 5월 10일 그의 탈출을 돕고 함께 달아났다. 벨기에와 영국에서 망명 생활을 하다 1880년 사면 뒤에야 돌아왔다.
다른 이름: 샤를 이폴리트 루이 제라르댕
주요 활동과 소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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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1
파리 코뮌(1871)코뮌 의원·공안위원회 위원프랑스 국가원수 · 정부 수반대표
정부·행정
경력 연표
- 1870–1871국민방위대 대대장
- 1871.03.26–05.10파리 코뮌 평의회 의원 (17구)
- 1871.05.01–09파리 코뮌 공안위원회 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