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운동에서 무장 레지스탕스로 나아간 공산주의자
“수와 단결이 우리 힘이 될 것이다.”
금속노동자와 노동조합 활동가로 출발한 샤를 티용은 1919년 해군 mutiny에 참여한 뒤 프랑스 공산당과 CGTU의 지도자로 성장했다. 그는 1940년 독일 점령에 맞선 민족해방과 노동계급의 단결을 호소했고, 1941년부터 공산주의 무장조직을 통합해 프랑스 유격대·의용군(FTP)을 이끌었다. 해방 뒤에는 장관과 의원으로 국가 재건에 참여했지만, 당 지도부와의 갈등으로 1952년 권력에서 밀려났고 1970년 공산당에서 제명됐다.
경력 연표
- 1916–1921프랑스 해군 기관병, 1919년 군함 게생의 반란 주도, 군사형무소 수감
- 1921–1931프랑스 공산당 가입, CGTU 일드빌렌 지역·낭트 노동조합 지도자
- 1931–1936CGTU 전국 지도부, 공산당 중앙위원회 위원 및 정치국 후보위원
- 1936–1940하원의원, 스페인 공화파 피난 지원 활동
- 1940–1944공산당 비밀 지도부, 국민군사위원회와 FTP 창설·최고사령관
- 1944–1947공군·군수·재건부 장관, 아ubervilliers 시장 및 의원
- 1952–1970공산당 지도부에서 축출, 1957년 복권, 1970년 제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