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를 티용

Charles Tillon
프랑스 의용유격대 공산주의 프랑스 프랑스계 1897–1993 ○ 자연사

노동운동에서 무장 레지스탕스로 나아간 공산주의자

“수와 단결이 우리 힘이 될 것이다.”

금속노동자와 노동조합 활동가로 출발한 샤를 티용은 1919년 해군 mutiny에 참여한 뒤 프랑스 공산당과 CGTU의 지도자로 성장했다. 그는 1940년 독일 점령에 맞선 민족해방과 노동계급의 단결을 호소했고, 1941년부터 공산주의 무장조직을 통합해 프랑스 유격대·의용군(FTP)을 이끌었다. 해방 뒤에는 장관과 의원으로 국가 재건에 참여했지만, 당 지도부와의 갈등으로 1952년 권력에서 밀려났고 1970년 공산당에서 제명됐다.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

해방 후 국가 재건과 3개 부처 (1944–1947)

해방 직후 티용은 공산주의 레지스탕스의 대표로 드골 정부에 들어갔다. 그는 1944년 오베르빌리에 시정을 맡았고 1945년 지방선거에서 시장에 당선되어 1947년 재선됐으며, 1936년에 얻었던 의석을 이어 임시자문의회 의원이 됐다. 장관직은 1944년 9월 10일부터 1945년 11월 21일까지 항공부, 1945년 11월 21일부터 1946년 12월 16일까지 군수부, 1947년 1월 22일부터 5월 4일까지 재건·도시계획부로 이어졌다. 항공부에서 그는 최초의 여성 군용 조종사 부대를 창설했고, 참모 마르셀 발타를 독일에 보내 베르너 폰 브라운을 프랑스로 데려오려 시도했다. 1945년 5월 알제리 세티프의 민족주의 시위와 그에 따른 유럽인 사망자에 대한 진압은 프랑스 항공기의 폭격으로 이뤄졌는데, 이는 그가 장관으로 재직하던 시기의 일이다. 티용은 뒤에 정부 동료나 자기 부서로부터 이 사실을 통보받지 못했으며, 참상의 규모를 알게 된 뒤 사퇴하려 했으나 당 지도부가 거부했다고 밝혔다. 이 시기 그는 당 중앙위원회·정치국·서기국의 충실한 구성원으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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