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정팅

王正廷
중화민국 국가기관 민족주의 중국 중국 1882–1961 ○ 자연사

파리 강화회의에서 베르사유 조약 서명 거부를 이끈 외교관, 1928–1931년 국민정부 외교부장

1882년 저장 펑화에서 성공회 목사의 아들로 태어나 도쿄에서 중화기독교청년회를 이끌며 1905년 중국동맹회에 들어갔고, 1910년 예일 대학교를 졸업했다. 1913년 국민당 소속 참의원 부의장이 되었고, 광저우 호법군정부의 외교차장으로 1919년 파리 강화회의에 나가 구웨이쥔과 함께 산둥 반환을 요구하고 조약 서명 거부를 이끌었다. 1922년 말 잠시 국무총리 대리를 지냈고 1924–1928년 베이양 정부의 외교·재정 총장을 오갔다. 1928–1931년 국민정부 외교부장으로 관세 자주권 회복을 추진했으나 만주사변 뒤 학생들에게 맞아 물러났고, 1936–1938년 주미 대사를 지냈다. 중국인 첫 국제올림픽위원이었고, 1949년 홍콩에 남았다가 1961년 죽었다.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