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령에 맞선 민중전쟁의 조직가
1942년 도므니스타에서 그는 소수의 산악 유격대를 이끌고 ELAS의 출현을 선언했다.
본명 아타나시오스 클라라스인 아리스 벨루히오티스는 그리스 공산당 활동가로서 점령기 그리스의 민족해방전선 EAM과 그 군사조직 ELAS를 연결한 핵심 조직가였다. 그는 1942년 루멜리 산악지대에서 소수의 유격대를 꾸려 ELAS의 초기 기반을 세웠고, 규율과 대중정치를 결합해 저항을 전국적 힘으로 키웠다. 고르고포타모스 교량 폭파 같은 연합작전은 점령에 맞선 무장투쟁의 가능성을 보여 주었지만, EAM-ELAS의 우세는 다른 저항세력 및 영국과의 충돌도 심화시켰다. 바르키자 협정 뒤 무장해제를 거부한 그는 당 지도부와 결별하고 1945년 고립된 채 죽었으며, 이후 그리스 공산주의 운동에서 복권되었다.
상세 이력 보기
- 1920년대좌익·반군국주의 운동에 참여하고 그리스 공산당에 가입
- 1930년대 초공산주의 신문 《리조스파스티스》 편집진으로 활동
- 1936–1941메타자스 독재 아래 투옥과 강제 전향 선언을 겪음
- 1942년 1월KKE의 파견으로 루멜리에서 유격전 준비를 시작
- 1942년 6월도므니스타에서 ELAS의 창설과 산악 유격대 활동을 공개
- 1942년 11월고르고포타모스 교량 폭파작전에 참여
- 1944년 10월해방 뒤 중부 그리스와 펠로폰네소스에서 ELAS 작전을 지휘
- 1945년바르키자 협정 뒤 무장투쟁을 계속하다 전사
아크로폴리스에서 점령의 상징을 끌어내린 저항가
1941년 5월 30일 밤, 산타스와 마놀리스 글레조스는 아크로폴리스에 올라 나치 깃발을 끌어내렸다.
아포스톨로스 산타스는 제2차 세계대전기 그리스의 저항운동가로, 마놀리스 글레조스와 함께 아테네 아크로폴리스의 나치 깃발을 철거한 일로 기억된다. 두 학생의 행동은 점령에 맞선 초기 공개 저항의 상징이 되었고, 독일 당국은 그들에게 궐석 사형을 선고했다. 산타스는 이후 EAM과 ELAS에 참여해 무장투쟁을 벌였지만, 해방 뒤에는 좌파라는 이유로 이카리아와 마크로니소스 등지에 유배되었다. 그는 이탈리아를 거쳐 캐나다에 정치적 망명을 신청했다가 1962년 그리스로 돌아왔다.
상세 이력 보기
- 1941마놀리스 글레조스와 함께 아크로폴리스의 나치 깃발을 철거했다.
- 1942민족해방전선(EAM)에 참여했다.
- 1943그리스 인민해방군(ELAS)에 참여해 중부 그리스에서 추축국에 맞서 싸웠다.
- 1944해방 뒤 법학 공부를 마쳤다.
- 1946–1948좌파적 신념 때문에 이카리아, 프시탈레이아, 마크로니소스로 유배되었다.
- 1948–1962이탈리아를 거쳐 캐나다로 탈출해 정치적 망명을 얻었다.
- 1962–2011그리스로 돌아와 아테네에서 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