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엄령 실행자에서 원탁회의 공동의장이 된 폴란드 내무장관
원탁회의 합의문 서명 후 키슈차크는 '승자도 패자도 없다. 폴란드 국민이 승자다'라고 말했다.
폴란드 인민공화국의 군인·공산당 정치인으로, 1981년 내무장관에 임명되어 보이치에흐 야루젤스키와 함께 계엄령을 기획·집행하며 연대노조 탄압을 주도했다. 1989년에는 정부 측 원탁회의 공동의장으로서 레흐 바웬사와 협상하여 연대노조 재합법화와 부분 자유선거의 길을 열었다. 선거에서 연대가 압승한 후 총리로 지명되었으나 연대의 거부로 불과 3주 만에 사임했고, 타데우시 마조비에츠키 내각에서 부총리 겸 내무장관으로 잠시 머문 뒤 정계에서 은퇴했다.
주요 활동과 소속
- 1981–1990 보안·정보·치안 · 폴란드
경력 연표
- 1973–1979군사정보부장 (총참모부 제2국)
- 1979–1981내부군사부장 (WSW)
- 1981–1990내무장관
- 1981–1983구국군사평의회 위원
- 1982–1990폴란드 통일노동당 정치국 위원
- 1989원탁회의 정부 측 공동의장
- 1989.8총리 지명 (내각 구성 실패)
- 1989–1990부총리 겸 내무장관
관련 역사 사건
1989~1990년 내무부와 보안기관의 전환
1989년 6월 선거 뒤에도 내무부와 국방부는 공산당 정부의 통제 아래 남았고, 키슈차크는 내무장관으로서 국가보안국을 포함한 내무부 기구를 계속 지휘했다. 8월 타데우시 마조비에츠키가 연대노조 출신 총리가 된 뒤에도 키슈차크는 부총리 겸 내무장관으로 남아 야루젤스키 대통령에게 충성을 유지했다. 보안기관은 1989년 8월부터 1990년 5월까지 단계적으로 개편됐고, 1990년 5월 국가보안국이 해체되어 국가보호청으로 대체됐다. 키슈차크는 1990년 7월까지 내무장관직을 유지했다.
정권교체기에는 내무부 산하 국가보안국의 기록도 대규모로 파기됐다. 1989년 7월 국가보안국장 헨리크 단코프스키는 전화회의에서 부하들에게 ‘쓸모없는’ 자료를 파기하라고 권고했고, 문서 파기는 여러 기관에서 진행됐다. 연구자 토마시 코즈워프스키는 1989~1990년 국가보안국 기록의 상당 부분이 파괴됐으며 지역별 편차가 컸다고 지적한다. 키슈차크의 개인적 책임 범위가 이 기록 파기 전체와 어떻게 연결되는지는 확인된 사실과 구별해야 한다. 다만 그는 내무장관으로 보안기구를 계속 통솔했고, 퇴임 뒤에도 국가보안국의 비밀 협력자 ‘볼레크’ 관련 문서가 그의 집에서 발견됐다. 폴란드 국가기억연구소는 그 집에서 발견된 1970~1976년 문서 158건을 분석한 전문가 의견을 공개하며, 문서 일부가 레흐 바웬사의 자필이라고 결론 내렸다. 바웬사는 협력을 부인했다. 이 자료는 1970년대 초의 협력 문제를 다루며, 키슈차크가 그 기록을 보유한 경위나 이를 정치적 협박에 쓰려 했다는 동기는 연구자의 해석으로 보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