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트리히 폰 후고 헤르만 콜티츠

Dietrich von Choltitz

파리를 넘겨 파괴 명령을 거부한 독일 장군

1944년 8월 25일 그는 파리 주둔군의 항복 문서에 서명했다.

디트리히 폰 콜티츠는 제1차 세계대전부터 제2차 세계대전까지 복무한 독일 직업군인으로, 동부전선과 서부전선에서 나치 독일의 전쟁을 수행했다. 그는 1944년 8월 파리 군정관으로서 히틀러의 도시 파괴 명령을 실행하지 않고 프랑스군에 주둔군을 넘겨주어 파리 해방의 조건을 만들었다. 그러나 전후 영국의 도청 기록에는 크림반도에서 유대인 학살을 수행했다고 인정하는 발언이 남아 있어, 파리에서의 불복종이 그의 전쟁 책임을 지우지는 않는다.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

포로 수용과 전후 책임 인정

콜티츠는 파리에서 체포된 뒤 전쟁이 끝날 때까지 런던 북부의 트렌트파크에 다른 독일 고위 장교들과 함께 수감되었고, 이후 미국 미시시피주의 캠프 클린턴으로 이송되었다. 영국 당국은 전략 정보를 얻기 위해 장교들의 사적인 대화를 비밀리에 녹음했는데, 이 녹음은 그가 파리에서의 행동을 넘어 전쟁 범죄에 연루되었다는 증거로 남았다. 1944년 8월 29일자 도청 기록에서 그는 “내가 수행한 최악의 임무는, 그러나 대단한 일관성으로 수행한 임무는 유대인의 청산이었다. 나는 그것을 철저히 그리고 완전히 수행했다”라고 말했다. 그는 또한 1944년 10월 “우리 모두는 죄책감을 공유한다. 우리는 모든 일에 동조했고, 나치를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척했다. … 나는 내 병사들을 속여 이 쓰레기를 믿게 했다. 나 자신이 몹시 부끄럽다”라고 진술했다. 그는 적어도 나치가 유대인을 대량 학살하고 있다는 사실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으며, 세바스토폴에서 나치가 유대인 3만 6천 명을 총살했다고 추산하기도 했다. 다만 학살을 직접 지시했는지 여부는 사료의 검증이 충분하지 않아 확정할 수 없다. 콜티츠에게는 특정 혐의가 기소되지 않았고, 그는 1947년 4월 포로수용소에서 석방되어 바덴바덴에서 여생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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