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미트리 안토노비치 볼코고노프

Дмитрий Антонович Волкогонов
소련 소련 공산주의 소련 → 러시아 러시아인 1928–1995 ○ 위암

군 선전 장성에서 소련 기록을 파헤친 역사가로

비밀 기록보관소에서 레닌이 1918년 펜자에 보낸 '쿨라크 100명을 사람들 보는 앞에서 교수형에 처하라'는 전문을 발견했을 때, 볼코고노프는 이렇게 말했다: "레닌은 내 마음속에서 무너진 마지막 성채였다."

소련군 심리전 총국장과 군사정치총본부 부본부장을 지낸 상장군으로, 브레즈네프 시기 당 중앙위원회 비밀 기록보관소에서 연구하며 스탈린 평전 《승리와 비극》을 1978년부터 집필했다. 1983년 완성된 원고는 중앙위원회에 의해 출판이 금지되었다가 고르바초프의 글라스노스트 아래 1989년 공개되어 소련 역사학에 충격을 주었다. 군사사연구소 소장으로서 레닌과 트로츠키에 대한 비판적 전기를 출간했고, 《지도자들》 3부작으로 러시아 연방 국가상을 사후 수상했다. 만년에는 옐친의 국방 고문과 국가두마 의원으로 공산당·KGB 문서의 대대적 비밀해제를 주도했으며, 평생의 볼셰비키 신앙을 '유토피아적 포로 상태'라고 술회하고 정교회 세례를 받았다.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

전기의 수용과 역사학계 논쟁

볼코고노프의 전기는 출간되자마자 소련·러시아 역사학계에서 격렬한 논쟁을 불러일으켰고, 평가는 크게 두 방향으로 갈렸다. 러시아와 미국 학계 일각은 그가 비밀 기록보관소에서 길어 올린 새 사료의 가치를 인정했다. 미국의 러시아사 연구자 리처드 파이프스는 볼코고노프가 대다수 역사가에게 폐쇄된 대통령 기록보관소에 접근한 뒤 공산주의와 그 지도자들에 대한 태도를 바꾸었다고 보았으며, 만년의 그를 '긴 최면에서 깨어난 사람'처럼 행동했다고 평했다. 레닌 전기를 쓴 영국 역사가 로버트 서비스는 레닌과 레닌주의가 러시아 문화와 이질적이라는 볼코고노프와 솔제니친의 주장에는 동의하지 않으면서도, 소비에트 국가가 진짜 레닌을 감추었다는 그의 문제의식은 공유했다.

반대로 그의 사료 해석과 방법론을 둘러싼 비판도 거셌다. 모스크바 국립대 교수 올레크 흘레브뉴크는 볼코고노프가 쓴 스탈린 전기가 '오히려 논픽션 저널리즘의 성격'을 띠며 그 자신이 '역사가가 아니라 정치가'라고 지적했다. 트로츠키 전기에 대해서는 역사가 유리 펠시틴스키가 '거의 모든 페이지가 사실 오류와 부정확함으로 뒤덮여 있다'고 비판했고, 철학자 로만 코솔라포프는 레닌 전기를 두고 '조작과 왜곡, 날조, 심지어 상투적인 거짓말이 없는 단락이 없다'고 혹평했다. 레닌 전기를 별도의 책으로 반박한 울리야노프스크의 역사가 조레스 트로피모프는 그 책이 '정치적 초상'이 아니라 '가십과 신화, 추측, 조잡한 오류로 가득한 편집물'이라고 규정했다.

프랑스 역사가 피에르 브루에와 미국의 대니얼 싱어 같은 비평가들은 레닌주의·스탈린주의·트로츠키주의를 하나의 연속된 이념으로 등치시켜 '마르크스주의는 악하고 혁명은 그르다'고 선언하려 한다는 점을 문제 삼았다. 이 논쟁은 볼코고노프의 작업이 사료 공개라는 성과와 정치적 논쟁의 대상이라는 성격을 동시에 지녔음을 보여준다.

← 카드로 돌아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