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리히 레더

Erich Raeder
독일 국가기관 반혁명 세력 독일 독일계 1876–1960 ○ 전범 유죄, 1955년 석방

대양함대 구상을 끝까지 밀어붙인 나치 독일 해군 지휘관

1940년 작전명 바다사자 구상에서 영국 해협의 제해권과 상륙 수송의 취약성이 독일 해군의 근본적 약점으로 드러났다.

에리히 레더는 제정 독일 해군에서 경력을 쌓아 바이마르 공화국 해군과 나치 독일의 해군을 이끈 제독이다. 그는 전함 중심의 대양함대와 통상파괴전을 결합한 구상을 추진했지만, 제2차 세계대전이 시작될 때 독일 해군은 영국 해군과 맞설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1940년 작전명 바다사자에 대해서는 영국 해협의 제해권과 상륙 수송의 취약성을 들어 회의적이었고, 해군력의 한계는 계획의 실행 가능성을 제약했다. 전후 뉘른베르크 국제군사재판에서 공모, 평화에 반한 죄, 전쟁범죄로 유죄 판결을 받아 종신형을 선고받았으며 1955년 석방되었다.

다른 이름: 에리히 요한 알베르트 레더 · 에리히 라에더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

1918~1920년 반혁명적 해군 진압과 카프 폭동

제1차 세계대전 말 레더는 독일 해군 장교단의 반혁명적 진압 조치에 깊이 관여했다. 1918년 10월 28일 킬 군항에서 수병들이 정부의 승인 없이 명령된 최후 출격을 거부하며 반란을 일으키자, 레더는 이 반란을 진압하려는 시도에서 주요 역할을 맡았다. 이어 1918~1919년 겨울 레더는 해군 장교단과 국방장관 구스타프 노스케 사이의 연락관으로 활동했다. 노스케는 '법과 질서'를 내세운 다수파 사회민주당원이었고, 레더는 노스케에게 아돌프 폰 트로타를 해군 총사령관으로 임명할 것을 제안했다. 노스케의 요청으로 해군은 공산주의자 봉기를 진압할 프라이코르에 두 개 여단을 파견했다.

레더의 정치적 태도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1920년 카프 폭동 때 그는 해군 장교단 대부분과 함께 볼프강 카프의 '정부'를 공개적으로 지지하며 바이마르 공화국 지도부에 맞섰다. 이 지지가 폭동의 실패로 끝나자 레더는 해군 내에서 주변부로 밀려나 해군 문서보관소로 전출되었고, 이후 2년간 제1차 세계대전 해군 공식사를 집필하는 데 주도적 역할을 했다. 이 작업에서 그는 크루저 통상파괴전을 정리하며, 북해에서 독일 함대가 소극적으로 움직인 탓에 영국이 함대를 돌려 독일 순양함 전대를 포클랜드 해전에서 격멸할 수 있었다는 논지를 세웠다. 독일 측 사료에 따르면 이 결론은 훗날 그가 해군 총사령관으로서 내린 판단의 중요한 근거가 되었다. 1922년 복권된 그는 해군 교육국장으로 임명되어 소장으로 승진했고, 카프 폭동 이래 따라붙던 공화국 적대적 우파 이미지를 벗기 위해 바이마르 헌법에 대한 충성을 거듭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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