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문에도 리트비노프를 끝내 고발하지 않은 외무인민위원부 언론국장
파르부스의 아들로 드레스덴에서 태어나, 1922년부터 외무인민위원부와 《이즈베스티야》 외신부에서 일했고, 베를린 대사관 1등 서기관을 거쳐 1937~1939년 외무인민위원부 언론국장을 지냈다. 1939년 5월 리트비노프 해임 직후 체포되어 베리야의 집무실과 수하놉카 감옥에서 고문당했지만 거짓 진술을 하지 않았고, 1941년 10년형과 유형을 선고받았다. 1955년 복권된 뒤 사하로프와 가까운 반체제 언론인이 되었고 1979년 항의의 뜻으로 소련공산당을 떠났다. 회고록 『파국과 두 번째 탄생』과 『미궁에서 나오는 길』을 남겼다.
다른 이름: 예브게니 겔판트
주요 활동과 소속
- 1922–1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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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1–1979
외교·국제활동
경력 연표
- 1922–1930외무인민위원부 근무(무역정책 하위부장, 독일 담당 수석 보좌관)
- 1927–1935.02《이즈베스티야》 외신부 부부장
- 1935.02–1937.06베를린 주재 소련 대사관 1등 서기관
- 1937.06–1939.05외무인민위원부 언론국장
- 1939.05체포, 수하놉카 감옥 수감(1940~1941)
- 1941징역 10년과 종신 유형 선고
- 1955.10복권, 당적 회복
- 1979항의 탈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