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브게니 브로니슬라보비치 파슈카니스

Евгений Брониславович Пашуканис
소련 러시아 1891–1937 ✕ 처형

법의 상품형태론을 주창한 마르크스주의 법철학자, 소련 국가의 법적 형태에 대한 가장 근본적인 비판자

1936년 11월 소련 법무부인민위원에 임명된 지 두 달 만인 1937년 1월 20일, 자신이 이론화한 소비에트 법 체계의 정점에서 NKVD에 체포되었다. 법의 소멸을 주장한 마르크스주의 법철학자가 국가 권력의 가장 직접적 형태 앞에 선 순간이었다.

20세기 마르크스주의 법이론의 가장 중요한 인물. 1924년 저작 『법의 일반이론과 마르크스주의』에서 법 형식이 상품 교환 관계에서 비롯되며, 공산주의 아래서 국가와 함께 소멸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1922년 스투치카와 함께 공산아카데미 법학부를 창설했고, 이후 공산아카데미 부원장과 소비에트건설·법연구소 소장을 지냈다. 1936년 소련 법무부인민위원이 되었으나, '프롤레타리아 법' 개념을 옹호한 비신스키와 충돌했다. 1937년 1월 체포되어 9월 처형되었고, 1956년 사후 복권되었다. 그의 상품형태론은 오늘날까지 비판법학과 법사회학에서 폭넓게 연구되고 있다.

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

프롤레타리아 법 논쟁: 파슈카니스 대 비신스키

파슈카니스의 이론적 핵심이자 그를 파멸로 이끈 정치적 충돌은 '프롤레타리아 법'의 존재 가능성을 둘러싼 안드레이 비신스키와의 논쟁이었다.

파슈카니스는 『법의 일반이론과 마르크스주의』(1924)에서 마르크스의 상품형태 분석을 법에 적용하여, 법 형식 자체가 상품 소유자들 사이의 등가 교환 관계에서 비롯된다고 주장했다. "오직 부르주아-자본주의 사회만이 법적 계기가 완전한 명확성에 도달하는 데 필요한 모든 조건을 창출한다"는 것이 그의 논지였다. 이로부터 그는 프롤레타리아 법이라는 개념 자체를 거부했다. 부르주아 법의 범주들이 소멸하는 것은 새로운 프롤레타리아 법 범주로 대체되는 것이 아니라 법 일반의 소멸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사회주의로의 이행기 법은 여전히 본질적으로 부르주아적이며, 계획 경제가 강화될수록 법적 형식은 점차 불필요해진다고 보았다. 이 관점은 소비에트 법률가들에게 불편한 결론을 암시했다. 법률 기술의 번영이 아니라 법의 시들을 예비하는 것이 마르크스주의 법이론의 과제라는 것이다.

비신스키는 1937년 「법이론 전선의 정세에 관하여」라는 글에서 파슈카니스를 정면 공격했다. 파슈카니스의 이론을 "트로츠키즘과 우익의 반혁명적 복고주의"와 연결 짓고, 소비에트 법을 부르주아 법으로 간주하는 것은 사회주의 건설의 현실을 부정하는 행위라고 비난했다. 비신스키의 핵심 반론은 실천적이었다. 만약 파슈카니스의 논리대로라면, 사회주의가 발전할수록 법과 헌법의 역할은 점점 줄어들어야 한다. 그러나 1936년 스탈린 헌법은 법적 형식의 절정이었다. 비신스키는 소비에트 법이 역사상 가장 높은 유형의 법, 즉 사회주의 법이라고 선언하며 "프롤레타리아 법"이라는 파슈카니스가 거부했던 범주를 적극적으로 긍정했다. "사회주의적 합법성"은 혁명적 파괴의 도구가 아니라 국가의 안정성과 계획적 건설을 보장하는 원리로 재정의되었다.

이 논쟁은 단순한 학술 대립이 아니었다. 파슈카니스의 법 소멸론은 혁명적 마르크스주의에 충실한 것이었으나, 스탈린 체제의 국가 강화 노선과 근본적으로 충돌했다. 비신스키의 승리는 소비에트 법학을 혁명적 전망에서 국가주의적 교리로 전환시켰으며, 이 체제는 소련 붕괴까지 지속되었다. 파슈카니스가 '인민의 적'으로 몰려 처형된 것은 이론적 패배의 가장 극단적 귀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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