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브게니 사무일로비치 바르가

Varga Jenő
소련 헝가리 1879–1964 ○ 자연사

1929년 대공황을 예측하고도 자본주의의 적응력을 인정했다는 이유로 연구소가 폐쇄된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

1920년대 말, 모두가 자본주의 안정화를 확신할 때 대공황을 예측했고, 모두가 자본주의 붕괴를 말할 때 그 종말을 예측하여 스탈린의 신임을 얻었다.

헝가리 출신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로, 1927년부터 20년간 소련 과학아카데미 세계경제세계정치연구소(ИМХМП)를 이끌며 코민테른 최고의 경제분석가로 활약했다. 1929년 대공황의 도래와 종료를 정통 노선에 역행하여 정확히 예측해 스탈린의 신임을 얻었으나, 전후에는 전시 국가개입으로 자본주의가 적응·안정화될 수 있다고 분석한 저작으로 1947년 연구소 폐쇄와 함께 맹렬한 공격을 받았다. 스탈린 사후 복권되어 1963년 레닌상을 수상했고, 유언에 따라 사후 공개된 유고에서는 소련 관료제의 변질과 국제주의 포기를 날카롭게 비판했다.

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

『제2차 세계대전 후 자본주의 경제의 변화』(1946)와 1947년 논쟁

1946년 바르가는 자신의 가장 논란이 된 저작 『제2차 세계대전 후 자본주의 경제의 변화』를 출간했다. 이 책의 핵심 주장은 전시 동원을 통해 서구 자본주의 국가들이 경제에 대한 국가 통제 능력을 획기적으로 확대했으며, 이로 인해 사적 독점과 국가 권력이 결합된 '국가독점자본주의'가 등장했다는 것이다. 바르가는 케인스주의적 재정정책과 국유화 조치 같은 전시 국가개입이 일시적 현상이 아니라 전후에도 지속될 수 있는 구조적 변화라고 보았다. 이 분석은 전후 즉각적인 자본주의의 총체적 위기를 예견하던 코민테른 정통 노선(당시 소련 지도부의 공식 입장)과 정면으로 충돌했다. 바르가는 전쟁으로 파괴된 유럽 경제의 회복이 자본주의 체제에 새로운 활력을 줄 가능성을 인정했고, 나아가 전시 국가개입 경험이 자본주의 국가 내에서 사회주의적 전환을 위한 조건을 성숙시킬 수 있다고 주장했다.

1947년 5월 소련 과학아카데미와 모스크바대학이 공동 주최한 비공개 경제학자 회의에서 바르가의 저작은 집중적인 공격을 받았다. 참석자 대부분은 그가 자본주의의 적응력을 인정함으로써 마르크스주의의 기본 명제(자본주의의 필연적 붕괴)를 약화시켰다고 비판했다. 고스플란 의장이자 정치국원이었던 니콜라이 보즈네센스키는 '고려할 가치도 없는 공허한 견해'라며 결정타를 날렸다. 1947년 9월 18일 정치국의 결정으로 바르가의 연구소 ИМХМП는 폐쇄되고 고스플란 산하로 흡수되었으며, 학술지 『세계경제와 세계정치』도 폐간되었다. 이는 전후 냉전이 격화되면서 소련 지도부가 더 이상 자본주의의 안정화 가능성을 논의하는 분석을 용납하지 않기로 결정한 정치적 조치였다. 바르가는 연구소장직을 잃고 대소비에트백과사전 제2판에서 '부르주아 경제학자'로 낙인찍혔으나, 체포되지 않고 아카데미 회원 자격은 유지했다. 강력한 후원자가 있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1949년 보즈네센스키가 체포된 이틀 뒤인 3월 15일, 바르가는 『프라우다』에 자기비판 서한을 게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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