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르디난트 프라일리그라트

Ferdinand Freiligrath
러시아 혁명적 민주주의자 독일 독일 1810–1876 ○ 자연사

「죽은 자가 산 자에게」로 기소되었다가 무죄로 풀려나 「신라인 신문」 편집진에 들어간 1848년의 혁명 시인

1810년 리페 공국 데트몰트에서 교사의 아들로 태어나 상업 견습을 거쳐 시인이 되었고, 1838년 첫 시집으로 큰 인기를 얻었다. 1842년 프리드리히 빌헬름 4세에게서 연금을 받았으나 1844년 연금을 반납하고 「신앙 고백」으로 민주주의 선동에 나섰다. 벨기에에서 마르크스를 만났고 스위스와 런던에서 망명 생활을 하다가 1848년 혁명으로 돌아와 뒤셀도르프에 자리 잡았다. 시 「죽은 자가 산 자에게」로 체포되었으나 프로이센 최초의 배심 재판에서 무죄를 받았고, 1848년 10월 「신라인 신문」 편집진에 들어가 외신을 맡았다. 1851년 다시 런던으로 갔다가 1868년 사면 뒤 돌아와 보불전쟁의 승리를 노래한 민족주의자가 되었다. 1876년 칸슈타트에서 죽었다.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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