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48년 베를린 봉기 앞에서 물러섰다가 국민의회를 해산하고 프랑크푸르트의 황제 왕관을 거부한 프로이센 국왕
1795년 프리드리히 빌헬름 3세와 루이제 왕비의 아들로 태어나 1840년 즉위했고, 왕권신수설을 믿은 「왕좌 위의 낭만주의자」였다. 즉위 초 정치범 사면과 검열 완화로 기대를 모았다. 1848년 3월 18일 베를린 시가전 뒤 군대를 철수시키고 3월 21일 검정·빨강·금색 완장을 두르고 시내를 돌았으며, 3월 29일 캄프하우젠·한제만의 자유주의 내각을 세웠다. 그러나 11월 브란덴부르크 백작을 총리로 앉혀 반격했고 12월 5일 프로이센 국민의회를 해산하고 헌법을 흠정했다. 1849년 프랑크푸르트 국민의회가 바친 「독일인의 황제」 왕관을 거부했고, 작센·바덴·팔츠의 봉기를 군대로 진압했다. 1857년부터 뇌졸중으로 쓰러져 동생 빌헬름이 섭정을 맡았고 1861년 죽었다.
주요 활동과 소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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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0–1861
독일 국가기관대표
군주·왕실
경력 연표
- 1840–1861프로이센 국왕
- 1848베를린에서 군 철수, 캄프하우젠 내각 임명, 12월 국민의회 해산과 흠정 헌법
- 1849「독일인의 황제」 왕관 거부
- 1858동생 빌헬름의 섭정 시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