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아트 엔베르 오글루 무사예프

Fuad Ənvər oğlu Musayev
소련 소련 공산주의 소련 아제르바이잔인 1938–2017 ○ 신부전

바쿠 시당위원회 제1서기, 바쿠로 가는 버스를 막아 폭력을 숨가이트로 돌린 인물

“나는 이것이 포그롬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이 정착지들에서 도시로 통하는 모든 도로를 봉쇄하라고 명령했다. 명령은 실행됐다. 버스들은 숨가이트로 향했다.”

소련 및 아제르바이잔의 당·국가 관료로, 건설 분야에서 경력을 쌓아 1983년 바쿠 시당위원회 제1서기가 되었다. 1988년 2월 아르메니아에서 쫓겨난 아제르바이잔인 난민들이 버스로 바쿠에 몰려들자 시내 진입로를 봉쇄했고, 이 조치는 바쿠의 폭력적 충돌을 막았으나 버스 행렬이 숨가이트로 방향을 돌리게 만들었다. 소련 해체 후에는 독립 아제르바이잔의 첫 축구협회 회장(1992~2003)을 지내며 아제르바이잔 축구의 UEFA·FIFA 가입을 이끌었다.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

1988년 2월: 바쿠 봉쇄 결정과 그 결과

1988년 2월 20일 무사예프는 키슬로보츠크 휴양지에서 바쿠로 소환되었다. 그는 도시의 긴장을 확인하고 “누군가 분명히 사람들을 선동하고 있었고, 선전이 본격적으로 돌아가고 있었다”고 술회했다. 같은 날 저녁 그의 압력으로 바쿠 시당위원회는 시내 진입 제한을 결정했고, 목봉으로 무장한 의용 순찰조가 거리를 돌며 아르메니아인 구역을 감시했다.

그의 증언에 따르면 2월 중순부터 아르메니아에서 밀려온 수백 명의 아제르바이잔인 피난민이 아프셰론반도 정착지에 배치되었고, 아침마다 그곳에 버스가 투입되어 이들을 바쿠로 실어 날랐다. 피난민들은 당·정부 기관이 아니라 노동자·학생 기숙사로 몰려가 아르메니아에서 겪은 박해를 이야기하며 군중을 흥분시켰다. 무사예프는 사태가 포그롬으로 치닫는다고 판단해 이 정착지들에서 도시로 통하는 모든 도로를 봉쇄하라고 명령했고, 버스들은 숨가이트로 향했다.

후과는 양쪽으로 갈린다. 드 발에 따르면 바쿠에서는 시 당국의 조치로 최소 두 차례의 포그롬 시도가 지연되었으나, 그는 결과적으로 폭발의 장소를 바쿠에서 30킬로미터 떨어진 숨가이트로 옮겼을 뿐이다. 예방 조치로 숨가이트에서 매일 바쿠로 통근하던 수천 명의 노동자 진입도 막았고, 아르메니아를 떠난 아제르바이잔인 피난민들을 숨가이트 교외의 파트마이·사라이 두 마을에 정착시켰다. 바쿠가 잠잠해지자 숨가이트가 들끓었고, 2월 27~29일 포그롬으로 최소 30명 이상이 죽었다. 무사예프 본인은 이 결정이 대규모 유혈을 막으려 한 조치였다고 설명했다.

원인과 책임을 둘러싼 해석은 갈린다. 무사예프는 낯선 사람들이 군중을 선동했다고 보았고, 일부 연구자는 중앙 당국이 민족 문제에 늦게 대응한 점을 지적한다. 사건의 배후에 소련 국가보안위원회가 있었다는 주장도 제기되었으나 확정된 결론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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