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개월 만에 숙청으로 사라진 계획 수장
1937년 2월 26일, 『이즈베스티야』 1면에 33세의 신임 고스플란 의장 스미르노프의 사진이 실렸다. 8개월 뒤 그는 반혁명 테러 조직 가담 혐의로 체포되었다.
소련의 경제 관료이자 계획 이론가로, 고스플란 자본건설 부문과 종합계획국을 거쳐 1937년 2월 고스플란 의장에 올랐다. 메즐라우크의 최측근으로서 그를 대신해 임명되었으나, 대숙청이 절정에 달한 8개월 동안 계획기구를 이끌다 1937년 10월 체포되었다. 반혁명 테러 조직 가담 혐의로 1938년 7월 총살되었으며, 1차 5개년계획을 설계한 계획 관료들마저 숙청의 대상이 된 순간을 상징하는 인물이다.
경력 연표
- 1916–1920철도 공장 제도 보조, 농업 코뮌 활동, 콤소몰 지도원
- 1921–1924심비르스크 콤소몰 정치교육부장·서기, 시당 위원회 선전선동부장
- 1924–1929크룹스카야 공산주의교육 아카데미·경제연구소 대학원 수학, 최고경제회의 자본건설부장
- 1930–1934소유즈콜호즈방크 부총재, 고스플란 자본건설부문장·간부회 구성원
- 1934–1937고스플란 부의장 겸 종합계획국장 — 메즐라우크의 최측근
- 1937.02–10고스플란 의장, 공업화 계획 총괄
- 1937.10–1938체포·기소·사형 — 대숙청이 계획기구마저 집어삼키다
- 1956사후 복권
관련 역사 사건
계획 이론과 고스플란 실무
스미르노프는 단순한 행정 관료가 아니라 소비에트 계획경제의 방법론을 고민한 실천적 이론가였다. 1929년부터 1937년까지 「5개년계획 전망에서 본 자본건설」(1929), 「자본건설 계획의 방법론 문제에 대하여」, 「2차 5개년계획의 문턱에서」, 「계획과 인간」, 「소련의 경제적 토대에 대하여」, 그리고 의장 재임 중 발표한 「계획 이행의 통제 — 계획기관의 가장 중요한 과제」(1937)까지 6편의 저작을 발표했다. 초기 두 편은 급속한 공업화 시대에 투자 배분의 논리를 정식화하려 한 작업이었고, 후기작으로 갈수록 계획과 인간 주체의 관계, 계획 집행 통제라는 더 넓은 문제로 시야를 확장했다.
1934년부터 1937년까지 스미르노프는 고스플란 부의장 겸 종합계획국장으로서 발레리 메즐라우크의 가장 가까운 협력자였다. 종합계획국은 개별 부문 계획을 하나의 전국적 틀로 통합하는 고스플란의 핵심 두뇌로, 이 자리에서 스미르노프는 산업·농업·운송·국방에 걸친 방대한 데이터를 취합해 단일한 계획 문서로 편성하는 실무를 총괄했다. 1937년 5월 24일 스미르노프 앞으로 제출된 「1931~1937년 노농적군의 전투·기술 보급에 관한 보고서」(RGАE, ф. 4372, оп. 91, д. 3001)는 포신, 소총, 전차, 항공기 등 군수 생산의 품목별 통계를 망라한 극비 문서로, 고스플란 의장이 민간 계획뿐 아니라 국방 계획의 최종 책임자였음을 보여주는 사료다.
이 저작들과 실무 경험은 스미르노프가 속한 계획 관료 세대의 특징을 드러낸다. 그들은 내전기에 청년 공산주의자로 출발해 크룹스카야 아카데미와 경제연구소에서 훈련받고 1차 5개년계획과 함께 고스플란으로 진입한 인물들이었다. 스미르노프의 비극은 그가 이 모든 경험을 집약해 고스플란을 이끌 자리에 올랐을 때, 바로 그 계획기구 자체가 대숙청의 표적이 되었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