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타에서 고르바초프와 냉전 종식을 선언했지만, 신중함이 거의 역사를 놓칠 뻔했던 미국 대통령
몰타 공동 기자회견에서 부시는 말했다. '우리는 항구적 평화를 실현할 수 있으며 동서 관계를 지속적 협력으로 바꿀 수 있습니다. 이것이 고르바초프 의장과 제가 바로 이곳 몰타에서 시작한 미래입니다.'
조지 H. W. 부시는 제2차 세계대전의 해군 조종사에서 석유 사업가를 거쳐 미국 제41대 대통령이 된 인물로, CIA 국장·유엔 대사·중국 주재 대표를 두루 지낸 외교 경험을 바탕으로 냉전의 마지막 4년을 이끌었다. 1989년 취임 직후 대소 정책 재검토라는 '부시 휴지기'로 고르바초프를 조바심나게 했으나, 그해 12월 몰타 회담에서 두 정상은 냉전의 종식을 공동으로 확인했고, 이듬해 독일 통일을 지지하며 유럽의 새 질서를 다졌다.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에는 다국적군을 조직해 걸프전으로 응수했으나, 불황 속에 '새로운 세금은 없다'는 공약을 깨면서 1992년 재선에 실패했다.
주요 활동과 소속
- 1989–1993 정부·행정 · 미국 국가기관
경력 연표
- 1924매사추세츠주 밀턴의 부유한 정치 명문가에서 출생
- 1942–1945해군 뇌격기 조종사로 58회 출격, 지치지마에서 격추되어 잠수함에 구조
- 1953–1966자파타 오프쇼어 석유회사 창업, 텍사스의 백만장자
- 1967–1971텍사스주 하원의원, 두 차례 상원 선거 낙선
- 1971–1977유엔 대사, 공화당 전국위 의장, 중국 주재 대표, CIA 국장
- 1981–1989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아래 부통령
- 1989–1993제41대 대통령: 몰타 회담으로 냉전 종식, 독일 통일 지지, 걸프전
- 2018휴스턴에서 94세로 사망
관련 역사 사건
- 1941–1945태평양 전쟁태평양전쟁 미 해군 조종사해군 뇌격기 조종사로 출격했고, 지치지마에서 격추된 뒤 잠수함에 구조됐다.
- 1985–1989신사고 외교와 냉전의 종식미국 대통령, 몰타 회담에서 고르바초프와 냉전 종식 확인1989년 12월 몰타 회담에서 냉전 종식을 공동 확인했으나, 소련 경제 붕괴를 막을 대규모 지원은 거부했다.
- 19891989년 톈안먼 시위와 6·4 진압제재와 비밀 접촉을 병행한 미국 대통령무기 금수를 결정하면서 스코크로프트를 베이징에 보냈다.
- 19918월 쿠데타와 소련의 해체고르바초프의 마지막 통화 상대1991년 12월 25일 사임 연설 두 시간 전, 고르바초프와 마지막 통화를 했다.
1988년 대선 운동: 이미지와 공세 정치
부시는 1987년 10월 13일 1988년 공화당 대선 경선 출마를 선언했고, 1988년 11월 8일 민주당의 마이클 두카키스를 꺾고 대통령에 당선되어 이듬해 1월 20일 취임했다. 경선 상대는 밥 돌 상원의원, 복음주의 전도사 팻 로버트슨, 잭 켐프 하원의원이었다. 부시는 오랫동안 '남의 일만 해 온 겁쟁이'라는 인식에 발목이 잡혔고, 이를 깨기 위해 제2차 세계대전 참전 이력을 부각한 전기 광고를 제작했다.
경선 초반은 순탄하지 않았다. 2월 아이오와 코커스에서 돌에 이어 3위에 그친 뒤 공세 광고를 제작했고, 2월 16일 뉴햄프셔 경선에서 승리한 데 이어 3월 8일에는 남부 '방화벽' 전략이 성공해 여러 경선을 휩쓸었다. 29일 만에 패배자에서 유력 후보로 뒤집힌 것이다. 8월 뉴올리언스 전당대회 둘째 날 댄 퀘일 상원의원을 러닝메이트로 지명했고, 본선 내내 두카키스를 앞섰다.
선거 운동의 중심에는 인물 이미지 관리와 상대 공격이 있었다. 선거대책본부장 리 애트워터는 두카키스의 낙인을 찍어 공격하는 전략을 지휘했고, 제작 자문 로저 에일스는 매사추세츠주의 외출 허가 제도를 문제 삼은 '윌리 호턴' 광고를 만들었다. 이 광고는 흑인 범죄자를 소재로 삼았다는 이유로 인종을 이용한 선동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애트워터는 뒤에 두카키스와 호턴을 겨냥한 자신의 발언들을 사과했다.
수용 연설에서 부시는 '내 입술을 보라, 새로운 세금은 없다'를 내걸어 재임 중 증세로 이어질 공약을 남겼다. 또 대통령이 되면 로널드 레이건의 정책을 크게 바꾸지 않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