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오르기오스 2세

Γεώργιος Βʹ

왕정 복고와 메탁사스 정권의 후견인

1936년 8월 4일, 게오르기오스 2세는 메탁사스가 의회를 중단하고 독재체제를 세우는 데 왕의 승인을 보탰다.

게오르기오스 2세는 정치적 위기 속에서 왕정의 복고와 유지를 추구한 그리스 국왕이었다. 1935년 왕위에 돌아온 뒤 이오아니스 메탁사스의 집권과 1936년 8월 4일 독재체제를 승인해 왕권과 군부 권위주의를 결합했다. 그는 영국과의 동맹을 유지하며 이탈리아와 독일의 침공에 맞섰지만, 전쟁 중 망명 정부를 이끌고 해방 뒤에도 왕정 복귀를 추진해 저항운동 세력과 충돌하는 정치적 유산을 남겼다. 1946년 왕위에 복귀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사망했다.

다른 이름: 조지 2세 · 그리스 국왕 게오르기오스 2세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

두 번째 망명과 왕정 복고, 1923~1935년

1922년 왕위에 오른 게오르기오스 2세는 곧 궁정을 둘러싼 정치 위기에 휩쓸렸다. 1922년 11월 ‘6인의 재판’에서 왕당파 전직 총리들이 처형됐으나 그는 사면권을 상실한 상태여서 개입할 수 없었다. 1923년 10월 왕당파 쿠데타 기도가 실패한 뒤 공화파 정부는 그에게 국외 이탈을 요구했고, 그는 퇴위를 거부한 채 12월 19일 부인 엘리사베트의 나라 루마니아로 떠났다.

1924년 3월 25일 의회가 제2 그리스 공화국을 선포하면서 그는 공식적으로 폐위되고 왕족 전체와 함께 그리스 시민권을 박탈당했다. 재산도 몰수되어 무국적자가 된 이들은 덴마크의 크리스티안 10세에게서 새 여권을 받았다. 망명 초기 그는 부쿠레슈티에 정착해 코트로체니 궁의 일부를 쓰다가 빅토리아 거리의 소규모 주택으로 옮겼고, 1932년 어머니 소피아가 죽은 뒤에는 런던으로 거처를 옮겨 브라운스 호텔의 작은 방을 세냈다. 이 시기 그는 왕정 복귀 의사를 밝히면서도 정치적 견해를 공개적으로 드러내지 않았고, 스스로를 그리스인으로 여겼다. 1935년 7월 6일에는 엘리사베트가 ‘가정을 버렸다’는 이유로 제기한 이혼이 부쿠레슈티 법원에서 그를 출석시키지 않은 채 처리됐다.

공화정의 불안정이 이어지면서 왕정 복고 여론이 커졌다. 1935년 10월 10일 게오르기오스 콘딜리스 장군이 정부를 전복하고 총리에 취임했고, 게오르기오스 2세는 국민투표를 요구했다. 콘딜리스가 준비한 1935년 국민투표는 비밀 투표가 아니었고 참여가 강제됐으며, 11월 3일 보고된 개표에서 약 98퍼센트가 왕정 복고를 지지했다. 이 결과를 근거로 11월 25일 그는 아테네로 돌아왔다. 이렇게 복고된 왕정은 곧 메탁사스의 권위주의 체제와 결합했고, 왕은 군대에 대한 통제권을 유지하며 반공·검열 정책에 왕권의 승인을 보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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