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바니아 전선에 승부를 건 그리스 육군 원수
독일군이 북부 국경을 침공했을 때도 그리스군 주력은 알바니아 전선에 묶여 있었다.
알렉산드로스 파파고스는 그리스 왕정과 메탁사스 독재체제에 충성한 직업군인이자 제2차 세계대전기 그리스 육군 지휘관이었다. 그는 1940년 이탈리아의 알바니아 방면 침공을 저지하고 반격을 조정했지만, 독일의 개입이 임박한 뒤에도 주력을 알바니아 전선에 남겨 메탁사스 방어선의 방어를 어렵게 했다. 점령기에 저항조직을 만들었다가 체포되어 강제수용되었고, 전후에는 내전에서 정부군을 지휘한 뒤 총리가 되었다.
다른 이름: 알렉산더 파파고스
주요 활동과 소속
- 군사·지휘 · 그리스 국가기관
- 1951–1955 정치·당 지도 · 그리스 연합
경력 연표
- 1906그리스 육군 기병 소위로 임관
- 1935–1936군사장관, 육군 총감
- 1936–1940육군 총참모장, 메탁사스 체제의 군사 기반 강화
- 1940–1941그리스 육군 총사령관, 알바니아 전선과 메탁사스 방어선 작전 지휘
- 1943–1945점령기 저항조직 군사계층 결성, 독일군에 체포되어 수감
- 1949–1951내전기 정부군 총사령관, 공산군에 대한 최종 공세 지휘
- 1952–1955그리스 총리
관련 역사 사건
원수 계급과 냉전기 총리직
내전이 끝난 뒤 파파고스는 1949년 10월 그리스 역사상 처음으로 원수 계급에 올랐고, 1949~1951년 그리스군의 총사령관으로 남았다. 1950년 4월 11일 국방부가 설치되자 그는 해군·공군·육군부를 통합한 새 체제와 국방참모본부를 조직하고 그 초대 총장이 되었다. 1951년 5월 군을 떠나 8월 6일 우익 정당 그리스 집회를 창당했고, 1952년 11월 16일 총선에서 49.22%로 238~240석을 얻어 총리에 취임했다.
그의 총리 재임기(1952~1955)는 냉전의 틀에 새겨졌다. 1952년 2월 18일 그리스는 튀르키예와 함께 NATO에 가입했고, 1953년 4월 9일 드라크마를 절반으로 평가절하하는 등 미국의 원조와 군사 계획에 맞춘 통치를 폈다. 미국 기지가 그리스 영토에 들어왔고 반공 국가기구가 구축되었다.
그러나 해결되지 않은 대립도 남았다. 1955년 파파고스는 재임 중 사망했고, 스테파노풀로스를 후계로 점찍었으나 파울 왕이 개입해 콘스탄티노스 카라만리스에게 정부 구성을 명했다. 이는 왕실과 군부의 개입 아래에서도 정당 정치가 제도적 경쟁의 장이었음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