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오르기 알렉산드로비치 튤린

Георгий Александрович Тюлин
소련 소련 공산주의 소련 러시아인 1914–1990 ○ 자연사

테레시코바, 레오노프, 루노호트의 발사에 'Go'를 내린 사람

보스토크 5호 발사 직전, 3단 'Go' 신호등이 들어오지 않자 위원회는 발사 중지 쪽으로 기울었다. 튤린은 코롤료프 편에 섰다 — 계측 오류다. 카운트다운을 재개했고, 발사는 완벽했다.

소련의 로켓우주 과학자이자 중장으로, GKOT 제1부의장(1963–1965)과 일반기계공업부 제1차관(1965–1976)을 지냈다. 국가위원회 의장으로서 테레시코바의 보스토크 6호, 레오노프의 첫 우주유영(보스호트 2호), 세계 최초 달 연착륙(루나 9호)과 루노호트(루나 17호) 등 역사적 발사마다 최종 발사 명령을 내렸다. 1974~1975년 아폴로-소유즈 계획의 소련 측 정부 책임자로서 공동 임무의 최종 책임을 맡았다. 14세 선반공으로 출발해 카추샤 로켓부대에서 복무한 포병장교 출신으로, 소련 로켓 프로그램을 제도화된 국가 역량으로 전환시킨 군사기술 관리자 중 한 명이었다.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

전투장교에서 로켓 기술 회수·시험 조직자로 (1944–1947)

1944년 말, 포병 중령이던 튤린은 전선에서 모스크바로 소환되어 근위박격포부대(카추샤 부대) 총국의 기술부 선임보좌관으로 임명되었고, 이 기술부는 곧 소련군 포병총감부 제5부로 개편되었다. 1945년 5월에는 베를린에 파견되어 군·민간 전문가로 구성된 특별 회수단을 이끌었다. 이 조직은 독일이 로켓 무기, 특히 A-4(파우-2) 분야에서 이룬 성과를 넘겨받는 임무를 맡았다. 1945년 5월부터 1947년 2월까지 그는 독일에 체류하며 '노르트하우젠' 연구소의 계산이론국장으로서 가이다코프 소장과 수석 엔지니어 코롤료프가 이끄는 집단에 참여해 독일 탄도로켓의 구조와 생산 기술을 연구했다. 이 시기 코롤료프와의 협력 관계가 형성되었고, 리바르톱스키와 공동으로 A-4 궤도 계산에 관한 연구를 출판해 대기 매개변수를 100km 고도까지 제시했으며, 1946년에는 단행본 『원거리 전투 로켓의 탄도학』을 냈다.

1946년 그는 소련군 포병총국 제4국(로켓) 제13부(비행이론부) 부국장이 되었고 곧 국장으로 승진했으며, 1947년 2월에는 카푸스틴 야르에서의 첫 파우-2 발사 준비에 참여해 탄도 계산 업무를 맡았다. 아스트라한 주에 건설 중이던 국가중앙시험장에서 그는 탄도학자 계산반을 이끌며 발사 초기 데이터와 조준 자료를 준비하고, 로켓의 추진 구간 측정 자료를 시각적으로 감시하고 처리하는 임무를 맡았다. 1947년 10월 18일 첫 발사부터 11월 12일까지 A-4 로켓 11발이 시험 발사되었고, 그는 그 결과 보고서와 정부 보고서 작성에도 참여했다. 자신이 전장에 나설 때 떠나온 모스크바 대학의 비행역학·탄도학 문제로 돌아선 것이 이 시기였고, 이 전환은 실험 발사 단계에 머물던 로켓 사업이 훗날 국가적 역량으로 제도화되는 출발점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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