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군 출신의 붉은 군대 지휘관
제1차 세계대전 공중전에서 게오르기 십자훈장 4개를 받은 비행사는 혁명 편으로 돌아서 1920년 옛 부하라 성채 공략을 직접 지휘했다.
게오르기 지노비예프는 제1차 세계대전의 군용 비행사에서 혁명과 내전의 적군 지휘관으로 변모한 군인이다. 그는 1919년 동부전선 반격에서 투르키스탄군을 이끌어 부구루슬란, 벨레베이, 우파 작전에 참여했고, 콜차크군의 진격을 되돌리는 데 기여했다. 전후에는 군사교육과 공병 지휘를 맡으며 초기 소비에트 군대의 제도화에 참여했다.
주요 활동과 소속
- 1917– 군사·지휘 · 소련 · 군사 · 국방
경력 연표
- 1915–1917서부전선 제2군 제3시베리아소총군단 항공대 비행사
- 1917제3시베리아소총군단 병사위원회 의장
- 1918스몰렌스크 주둔군 사령관
- 1918–1919오렌부르크·악튜빈스크 전선 지휘관
- 1919투르키스탄군 사령관
- 1919–1920제1군 사령관
- 1920–1921투르키스탄전선 혁명군사평의회 위원
- 1932–1934군사공병아카데미장 겸 정치위원
관련 역사 사건
1920년 부하라 작전과 스타라야 부하라 성채 함락
1920년 초 히바 칸국이 무너지자 부하라 토후국은 중앙아시아에서 마지막으로 남은 반소비에트 거점이 되었다. 미하일 프룬제가 총괄 지휘한 투르키스탄전선은 1920년 8월 말 부하라 작전으로 토후국 정권을 뒤집기로 결정했다. 제1군 사령관 지노비예프는 옛 수도를 직접 공략할 카간(신부하라) 집단군의 지휘를 맡았고, 8월 31일부터 성채 슈투름을 이끌었다. 9월 2일 카간 집단군과 특별임무대는 약 4미터 높이의 토벽으로 둘러싸인 스타라야 부하라 성채를 함락했고, 토후 알림 한은 무장 호위대를 거느리고 동부하라로 도주했다. 지노비예프는 도주한 토후에 대한 추격을 조직했으며, 이 공적으로 1920년 투르크전선 혁명군사평의회로부터 명예 금제무기를 받았다. 작전의 정치적 귀결은 1920년 10월 8일 부하라 인민소비에트 공화국의 수립이었고, 토후국은 소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