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련 말기 몰다비아 공산당의 마지막 수장
그는 공산당 금지를 “불법적인 행위”라고 규정하며 1991년의 단절을 비판했다.
그리고레 예레메이는 소련 말기 몰다비아의 당·국가 관료로, 소비에트 체제의 마지막 국면을 당 내부에서 관리한 인물이다. 그는 몰다비아 공산당 제1서기로 재임하며 연방 해체와 공화국 독립이 겹친 1991년의 전환을 통과했다. 당 해산 뒤에는 몰도바의 외교관과 국회의원으로 활동해 소비에트 정치 경력과 독립국가의 제도 정치 사이를 잇는 행보를 보였다.
다른 이름: 그리고리 이시도로비치 예레메이
주요 활동과 소속
- 1991 정치·당 지도 · 소련
경력 연표
- 1952농촌 중등학교 도서관장으로 노동 시작
- 1954–1956소련군 복무
- 1966–1970코토프스크 지구당 제1서기
- 1970–1980몰다비아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각료회의 부의장·제1부의장
- 1980–1990몰다비아 공화국 노동조합평의회 의장
- 1989–1991소련 인민대의원
- 1991몰다비아 공산당 중앙위원회 제1서기, 소련 공산당 정치국원
- 1994–1998루마니아 주재 몰도바 대사
소련 정치국
- 정위원 1991.04–1991.08
1991.11 당 활동 금지까지 재임
관련 역사 사건
소련 인민대의원 시절의 연방 정치
예레메이의 경력은 전연방 입법부를 거치기도 했다. 그는 1989년 선거에서 몰다비아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의 브리차니 민족·영토 선거구 제264호로 소련 인민대의원이 되었고, 소련 최고소비에트 민족원 소비에트의 사회·경제 발전 위원회 위원으로 일했다. 민족원은 연방 구성 공화국과 자치 단위의 대표로 구성된 기구였고, 그 위원회는 공화국들 사이의 사회·경제 격차 문제를 다뤘다. 위임은 1989~1991년에 이어졌기 때문에, 그가 1991년 2월 공화국 당 지도부로 돌아간 뒤에도 중앙 정치와 공화국 정치가 그에게 겹쳐 있었다.
그가 위임을 수행한 시기는 중앙과 공화국 사이의 권한 다툼이 가장 첨예했던 때였다. 1991년 3월 17일 연방 유지 국민투표는 여러 공화국의 반대 속에 강행되었는데, 이들 공화국의 최고기관은 자체 영역에서 그 실시를 막았고 몰다비아에서도 중앙 공화국 국민투표위원회가 구성되지 않았다. 투표가 실제로 이루어진 곳은 연방 유지를 지지한 지역 당국이 자체적으로 실시한 곳이거나 소련 군부대 주둔 지역이었고, 몰다비아에서는 스스로 공화국을 선포한 트란스니스트리아와 가가우지아, 그리고 키시뇨프에 주둔한 소련 국방부 군부대가 그에 해당했다. 이 지역들에서 보고된 투표율과 연방 유지 찬성 수치는 공화국 전체가 아니라 해당 지역의 결과였으며, 몰다비아 지도부와 중앙 사이의 주권 다툼이라는 배경 속에서 예레메이는 1991년 2월 당을 넘겨받았다.
전연방 차원 활동에서 주목되는 지점은 그가 중앙 기구 안에서 몰다비아의 특수한 문제를 제기한 일이다. 그는 작가 이온 드루차와 함께 독소 불가침 조약을 심의하는 위원회에 참여했고, 위원회 의장 알렉산드르 야코블레프에게 조약뿐 아니라 루마니아에 대한 소련의 최후통첩 문제도 함께 규탄할 것을 요구하는 서신을 여러 차례 보냈다. 최종 보고서에는 몰도바가 피해국으로 명시되지 않았고, 이 경위는 이후 몰도바 역사 논쟁에서 자주 인용되었다. 1991년 몰다비아의 당 지도자가 전연방 기구 안에서 일한 조건은 이러했다. 즉 그는 연방 의원 위임을 공화국과 중앙 지도부가 다투던 요구를 제기하는 통로로 사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