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리 아브라모비치 바트키스

Григорий Абрамович Баткис

『러시아의 성혁명』으로 소련이 동성애를 처벌하지 않는 까닭을 세계에 알린 사회위생학자

1923년 『러시아의 성혁명』에서 소비에트 법이 성을 사생활로 보아 동성애를 처벌하지 않는다고 밝혔으나, 1928년 동성애를 자연스러운 성으로 본 자신의 견해를 철회했다.

발타의 의사 집안에서 태어난 소련의 사회위생학자. 1919년 키예프 대학 의학부를 마치고 공산당에 들어가 내전기 우크라이나의 보건 조직에 참여했다. 1923~1930년 모스크바 대학 사회위생학 강좌에서 일하며 모스크바 사회위생 연구소를 이끌었고, 1923년과 1925년 『러시아의 성혁명』에서 동성애가 「완전히 자연스러운」 것이며 법과 사회가 존중해야 한다고 썼다. 보건인민위원 세마슈코와 함께 히르슈펠트의 성과학 연구소와 교류했으나 1928년 이 견해를 철회했다. 1931년부터 제2 모스크바 의과대학 강좌장, 1958년 보건부 중앙 위생통계 위원회 의장을 지냈고 1960년 모스크바에서 숨졌다.

주요 활동과 소속

관련 역사 사건

『러시아의 성혁명』과 그 철회

의사의 아들로 태어나 1919년 키예프 대학 의학부를 졸업했고, 같은 해 공산당에 들어가 내전 중 우크라이나에서 보건 조직을 세우는 일을 맡았다. 1923년부터 모스크바로 옮겨 1930년까지 제2·제1 모스크바 대학 사회위생학 강좌에서 일했고 모스크바 사회위생 연구소장을 지냈다. 1923년 펴낸 네 쪽짜리 소책자 『러시아의 성혁명』은 1917년 이후 소비에트 법이 성에 관한 모든 일을 사생활로 보아 동성 간 성행위를 정상적인 인간 성행동의 일부로 여기고 처벌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1925년 판에서도 그는 동성애가 「완전히 자연스러운」 것이며 법과 사회가 존중해야 한다고 썼다. 1920년대 초 그는 보건인민위원 세마슈코와 함께 히르슈펠트의 성과학 연구소 등 독일 학계와 활발히 교류하며, 소비에트 러시아의 처벌 폐지가 숙고 끝에 내린 조치라고 밝혔다. 그러나 1920년대 말 동성애를 질병으로 보는 공식 입장이 굳어지면서 세마슈코는 지지를 줄였고, 바트키스와 다른 성 연구자들은 1928년 동성애를 자연스러운 성으로 본 자신들의 앞선 보고를 철회했다. 그는 이후 사회위생학과 보건 통계 쪽으로 활동을 옮겨 1931년부터 제2 모스크바 의과대학의 사회위생·보건 조직학 강좌를 이끌었다. 1944~1950년 소련 보건부 중앙 위생통계 위원회 부의장, 1958년부터 의장을 지냈고, 1945년 소련 의학아카데미 통신회원이 되었으며 『대의학백과사전』 제2판의 공동 편집자로 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