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일 계획의 설계자: 계획경제에서 시장으로의 급진적 이행을 설계한 페레스트로이카 경제학자
1970년대 탄광 연구 중 갱도 붕괴로 동료 넷과 함께 얼음물에 열 시간 갇혔다. 구조되었으나 셋은 병원에서 사망했다. 야블린스키는 훗날 이렇게 회고했다: 「우리가 구출되었지만, 다섯 중 셋이 병원에서 죽었다」
리보프 출신 소련 경제학자이자 정치인. 플레하노프 국민경제대학을 졸업하고 탄광 노동 연구를 거쳐 1989년 레오니트 아발킨의 부름으로 소련 각료회의 통합경제국장이 되었다. 1990년 미하일 자도르노프, 알렉세이 미하일로프와 함께 500일 계획을 작성하여 2년 내 계획경제를 시장경제로 전환하는 로드맵을 제시했고, RSFSR 부총리 겸 경제개혁 국가위원회 부위원장으로 임명되었다. 고르바초프가 니콜라이 리시코프의 대안 계획과 절충하며 500일 계획이 무산되자 1990년 10월 사임했고, 이후 독자 싱크탱크 EPICenter를 설립했으며 1993년 야블로코를 창당해 러시아 자유주의 야당의 한 축을 형성했다.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 1976–1980전소 석탄공업관리연구소(VNIUUgol) 연구원
- 1980–1989노동·사회문제 국가위원회 중공업 부문장 → 종합부문 부장 → 사회발전·인구국장
- 1989–1990소련 각료회의 통합경제국장
- 1990.7–11RSFSR 각료회의 부의장 겸 경제개혁 국가위원회 위원장
- 1991.8–12소련 국민경제 운영관리위원회 부의장 (부총리급)
- 1991.10–12소련 대통령 직속 정치자문위원회 위원
- 1990–1993EPICenter 경제·정치연구소 설립자 겸 소장
- 1993–2008야블로코당 창당자 겸 당수
관련 역사 사건
우크라이나 전쟁 반대와 크림 문제
야블린스키는 2014년 우크라이나 위기 이후 크림 합병과 돈바스 전쟁을 일관되게 반대했다. 2014년 2월 『베도모스티』 기고에서 그는 우크라이나 사태가 러시아의 유럽 노선 거부에서 비롯되었으며 러시아가 주변에 불안정 지대를 만들고 있다고 진단했다. 3월 16일 크림 반도 주민투표를 앞두고 『노바야 가제타』에 실린 글에서 러시아 군대 사용을 절대 수용할 수 없다고 밝히고 크림 분리와 합병이 국가적 차원의 오류라고 규정했으며, 우크라이나 문제에 관한 국제회의를 소집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그는 2022년 2월 러시아의 전면 침공 이후에도 같은 입장을 유지했다. 야블로코는 침공을 최대한 규탄하는 성명을 발표했고, 야블린스키는 즉각적인 정전 협정과 포로 및 사망자 교환,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 평화 협상을 촉구했다. 2023년 2월 『노바야 가제타』에 실린 글에서 그는 정전이 평화 조약도 휴전도 아니고 사람을 살리기 위한 정치적 요구라고 주장했으며, 정전 협정이 러시아·우크라이나·미국·유럽연합·나토 지도부의 지지를 받아야 성립할 수 있다고 보았다. 2023년 7월에는 정전에 관한 7개 논점을 공개했다.
그는 야권 내부의 노선에 대해서도 비판적이었다. 2021년 2월 나발니의 정치 노선을 포퓰리즘과 민족주의라고 비판하며, 2011년 이후의 '똑똑한 투표' 전략이 반전 유권자들의 표를 분산시켰다고 평가했다. 2022년 1월에는 러시아에 전쟁이 닥칠 경우 돌이킬 수 없는 파괴적 결과와 러시아 국가의 붕괴가 초래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2011년 12월부터 2012년 3월까지의 부정선거 반대 시위에도 참여해 모스크바의 '공정한 선거를 위하여' 집회에서 연설했다. 2012년 대선 출마는 200만 명의 서명을 제출했음에도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서명 검증을 거쳐 등록이 거부되었고, 그는 이를 정치적 동기에서 비롯된 결정이라고 규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