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리 화이트

Harry Whyte

모스크바에서 동성애 처벌에 반대하는 편지를 쓴 영국 공산당원·언론인

모스크바에서 연인의 체포를 겪은 뒤, 1934년 5월 자신이 동성애자임을 밝히며 스탈린에게 처벌법의 근거를 물었다. 스탈린은 “문서고로. 백치이자 타락한 자”라고 적었다.

에든버러 출신의 영국 공산당원·언론인. 1932년 소련으로 옮겨 《모스크바 뉴스》에서 일하고 이듬해 편집국 책임자가 되었다. 관계를 맺던 남성이 체포되자 OGPU와 법무인민위원부 등에 자신과 동성애자의 법적 지위를 물었으나 엇갈린 답변을 받았다. 1934년 5월 모스크바에서 스탈린에게 편지를 보내 처벌법을 마르크스주의의 원칙으로 비판했다. 이후 영국으로 돌아갔으며 1960년 이스탄불에서 사망했다.

다른 이름: 해리 와이트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

모스크바 생활과 스탈린에게 보낸 편지

화이트는 영국 공산당 소속으로 소련에 살던 언론인이었다. 1931년 입당했고, 1932년 《모스크바 뉴스》에서 일하기 시작해 1933년 편집국 책임자가 되었다. 서한을 쓸 때에는 소련 공산당으로의 당적 이전이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였다. 따라서 그를 영국 공산주의자라고 부르는 것은 당시 거주지가 영국이었다는 뜻이 아니다.

편지는 추상적인 이론 논쟁에서 출발하지 않았다. 동성애자 체포가 시작되고 자신과 관계를 맺던 남성도 체포되자, 화이트는 OGPU에 문의했다. 본인에게 혐의를 씌울 것은 없다는 답을 들었고, 신문의 책임 편집자 미하일 보로딘도 그를 신뢰하며 사생활이 당원이나 편집국 직원의 자격을 해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나 1934년 3월 7일 법이 공포된 뒤에는 적발되는 모든 동성애 사례에 법을 엄격히 적용한다는 말을 들었다.

이처럼 자신의 생활과 연인의 체포, 당원으로서의 지위가 걸린 상황에서 그는 1934년 5월 스탈린에게 편지를 썼다. 동성애자에 대한 일률적인 형사처벌이 기존 소비에트 법과 마르크스주의의 원칙에 맞는지 물었다. 스탈린은 편지에 “문서고로. 백치이자 타락한 자”라는 메모를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