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성애자는 공산당원이 될 수 있는가?
인물해리 화이트, 이오시프 스탈린, 미하일 보로딘, 블라디미르 레닌, 마리뉘스 판데르루버, 마그누스 히르슈펠트, 라자르 카가노비치, 뱌체슬라프 몰로토프, 발레리안 쿠이비셰프, 미하일 포크롭스키, 니콜라이 부하린, 프리드리히 엥겔스, 카를 마르크스, 아돌프 히틀러 사건소련의 낙태 합법화·금지와 남색죄 재범죄화
편지
친애하는 스탈린 동지!
저는 아직 전연방 공산당(볼셰비키)으로 당적을 옮기지 못한 외국인 공산주의자이지만, 세계 프롤레타리아트의 지도자이신 동지께 한 가지 문제를 밝혀 주십사 요청드리는 것이 이상하게 여겨지지는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제 생각에 이 문제는 소련뿐 아니라 세계 여러 나라의 많은 공산주의자에게도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닙니다.
문제는 다음과 같습니다. 동성애자를 공산당원이 될 자격이 있는 사람으로 여길 수 있습니까?
최근 공포되어 올해 3월 7일 소련 중앙집행위원회의 승인을 받은 남색의 형사책임에 관한 법은, 동성애자가 소비에트 시민이라는 이름을 가질 자격이 없다는 뜻으로 보입니다. 그렇다면 전연방 공산당(볼셰비키)의 당원이 될 자격은 더욱 없다는 뜻일 것입니다.
저 자신이 동성애자이므로 이 문제는 제 개인과도 관련이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통합국가정치보안부(OGPU)와 법무인민위원부의 여러 동지, 정신과 의사들, 그리고 제가 일하는 신문의 책임 편집자인 보로딘 동지에게 이 문제를 물었습니다.
제가 얻은 것은 서로 모순되는 여러 의견뿐이었습니다. 이는 이 동지들 사이에 그 법이 어떤 근거에서 채택되었는지 명확한 이론적 이해가 없음을 보여 줍니다.
제가 이 문제로 처음 찾아간 정신과 의사는 법무인민위원부에 확인한 뒤, 자신의 환자들이 정직한 시민이거나 훌륭한 공산주의자라면 개인 생활을 원하는 대로 꾸려도 된다고 두 번이나 확언했습니다.
보로딘 동지는 개인적으로 동성애를 부정적으로 본다고 하면서도, 저를 상당히 훌륭한 공산주의자로 여기며 신뢰할 수 있고, 제가 원하는 대로 개인 생활을 해도 된다고 말했습니다.
그보다 조금 앞서 동성애자 체포가 막 시작되었을 때에도 보로딘 동지는 저를 형사처벌의 대상으로 볼 생각이 전혀 없었고, 나쁜 공산주의자로 여기지도 않았습니다. 그 증거로 그는 저를 승진시켜 편집국 책임자로 임명했습니다. 이는 편집위원들을 제외하면 가장 책임이 큰 자리입니다.
조금 뒤, 12월 17일자 법안은 이미 있었지만 아직 3월 7일 공포가 있기 전, 제가 동성 관계를 맺었던 한 사람이 체포된 일로 OGPU에 문의했을 때에도 제게 혐의를 씌울 만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이런 말들을 종합하면 소비에트 사법기관은 동성애 일반을 단속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위험한 특정 동성애자들을 단속하는 듯했습니다. 정말 그렇다면 일반적인 법률이 필요하겠습니까?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3월 7일 법이 공포된 뒤 OGPU에서 이야기를 나누었을 때에는 동성애가 적발되는 모든 경우에 법이 엄격히 적용될 것이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이 문제에 이런 불명확함이 있으므로, 동지께서 시간을 내어 답해 주실 수 있으리라는 희망으로 말씀을 드립니다. 이와 관련해 제가 이해하고 있는 대로 이 문제를 설명드리도록 허락해 주십시오.
무엇보다 먼저, 저는 계급적으로 노동자에 속하거나 넓은 의미의 근로자인 동성애자들의 처지가 자본주의 체제 아래 여성의 처지, 제국주의에 억압받는 유색 인종의 처지와 비슷하다고 봅니다. 또한 여러 면에서 히틀러 독재 아래 유대인의 처지와 비슷하며, 더 일반적으로는 자본주의 지배 아래 착취와 박해를 받는 모든 사회 계층의 처지와 닮은 점을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동성애자 박해의 성격을 분석할 때에는 동성애자에게 두 부류가 있음을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첫째는 태어날 때부터 그런 사람들입니다. 그 정확한 원인이 무엇인지를 두고 과학자들 사이에 의견 차이가 있더라도, 어떤 깊은 원인이 있다는 데에는 이견이 없습니다.
둘째는 정상적인 성생활을 하다가 나중에 동성애자가 된 사람들입니다. 어떤 때에는 악덕에, 어떤 때에는 경제적 사정에 떠밀려 그렇게 된 사람들입니다.
두 번째 부류에 관해서는 문제가 비교적 간단히 해결됩니다. 방탕 때문에 동성애자가 되는 사람들은 대체로 부르주아지에 속합니다. 그 일부는 여성과의 성관계에서 얻을 수 있는 온갖 쾌락과 도착에 싫증이 난 뒤 이 길로 들어섭니다.
경제적 사정 때문에 이 길로 들어서는 사람들 중에는 소부르주아지와 룸펜 프롤레타리아트, 그리고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프롤레타리아트도 있습니다. 특히 위기 때 더욱 심해지는 물질적 궁핍 때문에, 이들은 한동안 이런 방식으로 성적 욕구를 충족할 수밖에 없습니다. 돈이 없으니 결혼도, 하다못해 매춘부를 찾는 일도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욕구를 채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매춘으로 생계를 꾸리려고 동성애자가 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 현상은 오늘날 독일에서 특히 널리 퍼져 있습니다.
그러나 과학은 체질적 동성애자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밝혀냈습니다. 연구에 따르면 이런 유형의 동성애자는 사회의 모든 계급에 대략 같은 비율로 존재합니다.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동성애자가 전체 인구의 약 2%를 이룬다는 점도 확립된 사실로 볼 수 있습니다. 이 비율을 받아들이면 소련에는 약 200만 명의 동성애자가 있다는 계산이 나옵니다.
이들 가운데 사회주의 건설을 돕는 사람이 틀림없이 있다는 점은 차치하더라도, 3월 7일 법이 요구하는 대로 이토록 많은 사람을 감옥에 가두는 일이 정말 가능하겠습니까!
부르주아 계급의 여성이 자본주의 체제의 불의로 훨씬 적은 고통을 겪듯이, 지배계급에 속한 선천적 동성애자도 근로자 출신 동성애자보다 박해로 인한 고통을 훨씬 덜 겪습니다. 동지께서도 물론 레닌의 이 말씀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소련에서도 동성애자의 일상생활을 복잡하게 만들고 그들을 곤경에 빠뜨리는 조건이 있다는 점은 말씀드려야겠습니다. 제가 말하는 것은 성관계를 맺을 상대를 찾기 어렵다는 점입니다. 동성애자는 인구의 소수이고, 그 참된 성향을 어느 정도 감추어야 하는 소수이기 때문입니다.
부르주아 사회는 동성애자를 어떻게 대합니까? 이 문제에 관한 각국 법률의 차이를 고려하더라도, 특별히 부르주아적이라고 할 만한 태도가 있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그렇습니다!
법률과 무관하게 자본주의는 그 계급적 지향 전체에서 동성애에 반대합니다. 이는 역사 전체에서 확인할 수 있지만, 자본주의의 전반적 위기인 오늘날에는 특히 강하게 드러납니다. 자본주의는 번영을 위해 거대한 산업 예비군과 총알받이를 필요로 하므로, 동성애를 출생률을 떨어뜨릴 위험이 있는 요인으로 봅니다. 알려져 있듯이 자본주의 나라들에는 낙태와 그 밖의 피임 수단을 처벌하는 법이 있습니다.
물론 동성애 문제에 대한 부르주아지의 태도는 전형적인 위선입니다. 동성애자인 부르주아는 엄격한 법 때문에 별다른 불편을 겪지 않습니다. 자본가 계급의 내부 역사를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이 문제로 추문이 거듭 일어난다는 것을 압니다. 그리고 그 사건에 연루된 지배계급 구성원들이 겪는 피해는 미미합니다.
이와 관련해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 하나를 들겠습니다. 몇 년 전 애스터 경 부부의 아들 가운데 한 사람이 동성애로 유죄판결을 받았습니다. 애스터 경의 요구로 영국과 미국의 언론은 이 사실을 보도하지 않았습니다. 예외는 《모닝 애드버타이저》였습니다. 이 신문은 맥주 제조업자들의 기관지이므로, 금주법 도입 운동을 벌이던 애스터 경 부부의 명예를 떨어뜨리는 것이 이익에 맞았습니다. 이처럼 그 사실은 지배계급 내부의 모순 덕분에 알려졌습니다.
부르주아는 재산 덕분에 법의 처벌을 피할 수 있습니다. 반면 노동자 동성애자에게는 법이 온갖 엄격함으로 들이닥칩니다. 그들이 지배계급 구성원에게 몸을 파는 경우는 예외입니다.
저는 이미 자본주의가 총알받이와 산업 예비군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동성애와 싸운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자본주의는 근로자의 생활 조건을 악화시켜, 물질적 궁핍 때문에 이 길로 들어서는 동성애자가 늘어날 객관적 조건을 만들어 냅니다.
이 모순은 파시즘이 남색자 판데르루버를 도발의 도구로 이용하면서, 동시에 마그누스 히르슈펠트 박사가 이끌던 자유주의적 지식인들의 동성애자 “해방” 운동을 잔혹하게 탄압한 데에서 드러났습니다. 『갈색책』을 보십시오. 이 책은 히르슈펠트 사건을 파시스트의 반문화적 야만행위의 사례로 들고 있습니다.
프랑스의 동성애자 작가이자 반파시즘 운동 지도자 가운데 한 사람이며 소련의 열렬한 벗인 앙드레 지드도 이 모순을 보여 줍니다. 지드는 자신의 책에서 동성애를 공개적으로 썼기 때문에 프랑스 대중은 그가 동성애자임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프랑스 공산당의 동반자로서 그가 대중에게 갖는 권위는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지드가 혁명운동에 합류한 일은 그 운동의 성장이나 대중에 대한 공산당 지도력의 강화를 방해하지 않았습니다. 제 생각에 이는 대중이 동성애자를 배척하지 않음을 보여 줍니다.
“인종의 순수성”과 가족의 미덕을 찬양하는 파시즘은 히틀러 이전 정부보다 더욱 가혹하게 동성애를 대합니다. 그러나 파시즘은 노동자 가족을 파괴하고 대중의 빈곤을 심화시키므로, 사실상 제가 두 번째 부류로 분류한 동성애, 곧 궁핍에서 비롯되는 동성애의 발전을 부추깁니다.
이 모순을 해결하는 유일한 길은 기존 체제를 혁명적으로 바꾸고 새로운 사회를 만드는 것입니다. 실업이 없고, 대중의 생활이 나아지며, 경제 단위로서의 가족이 소멸하여, 누구도 궁핍 때문에 남색으로 내몰리지 않을 조건을 보장하는 사회 말입니다.
이른바 체질적 동성애자는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미미하므로 사회주의 국가의 출생률에 위협이 될 수 없습니다.
“물질적 복지 증대의 전반적인 결과로, 자본주의 나라들에서는 빈곤과 함께 사망률이 높아지는 반면 소련에서는 사망률이 낮아지고 출생률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전쟁 전과 비교하면 소련의 인구 증가량은 3분의 1 늘어났으나 자본주의 유럽에서는 10% 줄었습니다. 오늘날 인구가 1억 6500만인 우리나라는 인구가 3억 6000만인 자본주의 유럽과 같은 연간 인구 증가량을 보입니다. 보시다시피 이 일에서도 우리의 속도는 맹렬합니다. (웃음)”
(모스크바 당 조직 회의에서 행한 전연방 공산당(볼셰비키) 중앙위원회 사업에 관한 카가노비치 동지의 보고. 강조는 카가노비치 동지의 것.)
자본주의 나라들에는 유난히 엄격한 혼인법이 있지만, 정상적인 성생활 영역에서의 도착은 혼인법이 세계에서 가장 자유롭고 합리적인 소련보다 자본주의 나라들에서 훨씬 더 널리 퍼져 있습니다.
물론 혁명 초기에는 소비에트 혼인법이 보장한 자유를 악용하려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악용은 탄압 조치가 아니라 광범한 정치교육과 문화 활동, 그리고 사회주의를 향한 경제 발전을 통해 저지되었습니다. 제 생각에는 두 번째 부류의 동성애에 대해서도 이런 방침이 가장 풍성한 결실을 거둘 것입니다.
저는 근로자 동성애자를 자본주의적 착취 조건에서 해방하자는 별도의 구호를 내거는 것은 잘못이라고 늘 생각해 왔습니다. 그 해방은 온 인류를 사적 소유에 기초한 착취의 억압에서 해방하기 위한 전체 투쟁과 분리할 수 없다고 봅니다.
저는 이것을 쟁점으로 만들거나, 이론적 문제로 제기하거나, 이 문제에 관한 당의 명확한 견해를 구할 생각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현실 자체가 이 문제를 제기하고 있으며, 저는 원칙적인 명확성을 얻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보로딘 동지는 제가 동성애자라는 사실이 혁명가로서 저의 가치를 조금도 줄이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저를 편집국 책임자로 임명하며 큰 신뢰를 보여 주었습니다. 당시 그는 저를 형사처벌을 받거나 받을 수 있는 사람으로 대하지 않았습니다. 또한 제 개인 생활이 당원이자 편집국 직원으로서의 제 지위에 조금이라도 해를 끼칠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체포 문제를 물었을 때 그는 다시 한번, 그리고 그를 통해 OGPU도, 이 경우 체포의 이유는 정치적 성격의 것이며 사회도덕적 성격의 것이 결코 아니라고 확언했습니다. 당시에는 이미 12월 17일자 법안이 있었습니다. 제가 OGPU에 관련 사항을 진술한 뒤에도 “당신에게는 혐의를 씌울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12월 17일자 법안을 알게 되었을 때 여러 사람에게서 비슷한 답변을 받았습니다. 다만 법무인민위원부의 데고티 동지는 동성애가 부르주아적 퇴화의 한 형태라는 이유로 그 법을 설명했습니다.
제가 이 문제로 이야기를 나눈 정신과 전문의는 법 사본을 보여 주기 전까지 그런 법이 있다는 것을 믿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일부 동지에게 여러 잘못된 생각이 있었지만, 법이 공포되기 전 이 문제에 관한 여론이 동성애자에게 조금도 적대적이지 않았다는 점은 분명합니다. 그리고 저는 이것을 전혀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저는 동성애자 체포의 계기가 정치적인 이유였으므로 이를 아주 당연한 현상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이미 말씀드렸듯이 이 모든 것은 앞서 설명한 저의 문제 분석과 완전히 일치했고, 공식적으로 표명된 소비에트 사회의 견해와도 모순되지 않았습니다.
보로딘 동지는 『소비에트 대백과사전』의 동성애 항목을 너무 중요하게 여기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에 따르면 필자 자신이 동성애자였고, 그 항목은 여러 편향이 아직 폭로되지 않았던 시기에 실렸기 때문입니다.
공산주의자가 쓴 공산당의 역사를 불신해야 한다고 저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 항목을 동성애자가 썼다 하더라도, 그에게 요구되는 것은 동성애에 대한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접근뿐이었을 것입니다. 둘째로 저는 소비에트의 출판물에 대한 정치적 통제가 얼마나 효과적인지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소비에트 대백과사전』 같은 간행물에 심각한 편향을 지닌 글이 실릴 수 있다고는 생각할 수 없습니다. 별로 중요하지 않은 잡지나 신문의 개별 기사에서는 가능할지 몰라도, 『소비에트 대백과사전』에서는 그럴 수 없습니다.
어쨌든 저는 몰로토프, 쿠이비셰프, 포크롭스키 같은 사람들이 편집을 맡은 간행물을 충분히 신뢰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신뢰할 만한 정도가 덜하기는 해도 부하린 같은 사람까지 포함해서 말입니다.
그러나 제가 옹호하는 관점에서 보면 『소비에트 대백과사전』의 그 항목은 그리 중요하지 않습니다. 이 문제에 대한 소비에트 사회의 태도는 3월 7일 법이 채택되기 전까지 시행되던 법에 충분히 명확하게 표현되어 있었습니다. 법이 이 문제에 관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면 예전부터 의문이 있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법은 실제로 이 문제에 관한 견해를 제시했습니다. 미성년자의 유혹과 타락을 금지하여 사회의 이익을 보호했습니다. 여기에서 성인 사이의 동성 관계는 금지되지 않는다는 결론이 나왔습니다.
물론 법은 변증법적입니다. 상황이 변하면 법도 변합니다. 그러나 최초의 법이 승인될 때 동성애 문제 전체가 고려되었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적어도 그 법에서 도출되는 결론에 비추어 보면 그렇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 법은 소비에트 정부가 동성애 일반을 박해한다는 원칙을 거부했음을 확정했습니다.
이것은 근본적인 원칙입니다. 알려져 있듯이 근본 원칙은 새로운 상황에 맞추기 위해 바꾸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목적으로 근본 원칙을 바꾸는 것은 변증법자가 아니라 기회주의자가 되는 것입니다.
상황의 변화가 법률의 일부 수정이나 새로운 사회보호 조치의 적용을 요구할 수 있다는 점은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상황의 변화가 어떻게 우리의 근본 원칙 가운데 하나를 바꾸도록 강요할 수 있는지는 이해할 수 없습니다.
저는 동성애를 “치료”할 수 있는지 답을 얻으려고 두 명의 정신과 의사를 찾아갔습니다. — 동지께서는 이 일을 놀랍게 여기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제 쪽에서 보자면 이것이 기회주의였음을 인정합니다. 이번만큼은 아마 용서받을 수 있겠지만, 저를 그렇게 하도록 내몬 것은 이 지긋지긋한 딜레마에 어떤 해결책이라도 찾고 싶은 마음이었습니다.
제가 가장 원하지 않는 일은 소비에트 정부의 결정과 충돌하는 것이었습니다. 소비에트 법과 충돌하는 처지에 놓이는 일만 피할 수 있다면 무엇이든 할 준비가 되어 있었습니다. 저는 최근의 연구자들이 동성애의 참된 본질을 밝혔는지, 동성애자를 이성애자, 곧 이성과만 성관계를 맺는 사람으로 바꾸는 일이 가능한지 알아냈는지도 모르면서 이 길을 택했습니다. 그런 가능성이 실제로 확인되었다면 물론 모든 일이 더 간단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솔직히 말씀드리면 그런 가능성이 확인되더라도, 동성애자를 이성애자로 바꾸는 일이 정말 얼마나 바람직한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망설일 것입니다. 물론 그것을 바람직하게 만드는 어떤 정치적 동기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평준화 조치가 필요하다는 주장은 유난히 강력한 근거로 뒷받침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대다수의 사람이 성적으로 정상적이면 바람직하다는 데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런 일은 결코 없으리라 걱정합니다. 역사적 사실들이 제 우려를 뒷받침한다고 생각합니다.
대다수의 사람이 정상적인 성생활을 바라며 앞으로도 바랄 것이라는 점은 확신을 갖고 말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성적 성향에서 완전히 똑같아질 수 있다는 가능성에는 큰 의문이 있습니다.
동성애자는 인구의 불과 2%라는 점을 다시 말씀드립니다. 그 2% 가운데 소크라테스, 레오나르도 다빈치, 미켈란젤로, 셰익스피어, 차이콥스키 같은 뛰어난 재능을 지닌 사람들이 있었다는 점도 기억해 주십시오. 이들은 동성애자였다고 알려진 사람들입니다. 자신의 참된 성향을 감추었던 동성애자들 가운데에는 또 얼마나 많은 재능 있는 사람이 있었겠습니까?
저는 동성애자가 어떤 초인종에 속한다거나, 동성애와 천재성이 동의어라거나, 동성애자들이 언젠가 이성애자를 지배하려고 뭉쳐 그동안 겪은 고통에 대해 사회에 복수하리라는 터무니없는 이론을 결코 옹호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종류의 “이론들”은 이미 엥겔스가 1869년 6월 22일 마르크스에게 보낸 편지에서 마땅히 받아야 할 충분한 경멸과 함께 비판받았습니다. 그 편지에서 엥겔스는 자신들만의 특별한 조직을 만든 독일 부르주아 동성애자 일당이 내세운 “이론”에 관해 씁니다. 엥겔스는 그 모든 일을 “돼지 같은 짓”(schweinerei)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엥겔스의 분노를 불러일으킨 것이 그 조직의 정치적 “이론”이지 구성원들의 특정한 성적 지향이 아니었다는 점은 다음 사실에서 알 수 있습니다. 1890년 2월 8일 조르게에게 보낸 편지에서 엥겔스는 이렇게 썼습니다.
“이곳에서는 또다시 찻잔 속의 폭풍이 일고 있네. 자네는 《레이버 일렉터》에서 《스타》의 부편집자 피크가 일으킨 소동을 읽게 될 걸세. 그는 어느 지역 신문에서 이곳 귀족들의 동성애 추문과 관련해 개스턴 경을 남색 혐의로 공개적으로 비난했네. 그 글은 괘씸했지만 순전히 개인적인 성격이었고, 정치적인 문제라고 하기는 어려웠네. 하지만 큰 추문을 일으켰지.”
남색 혐의를 받고 귀족 사회에서 추문을 일으킨 적대계급 구성원의 문제가 엥겔스에게 “정치적인 문제라고 하기는 어려운” 일, “찻잔 속의 폭풍”으로 평가되었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원칙적으로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동성애를 부르주아적 퇴화의 특징으로 본다면 그 개별적인 발현을 공격하는 것은 옳을 것입니다. 특히 귀족 사회에 동성애 추문이 그토록 널리 퍼져 있던 시기라면 더욱 그럴 것입니다. 그러나 인용문에서 분명히 드러나듯 엥겔스는 동성애를 특별히 부르주아적인 퇴화의 형태로 보지 않았습니다.
그는 독일과 관련된 사례에서처럼 동성애가 특정 부르주아 분자들의 결집이라는 정치적 형태를 취할 때에만 그것을 공격했습니다. 반면 앞서 인용한 사례처럼 정치적 색채가 없을 때에는 굳이 공격할 필요가 없다고 보았습니다.
저는 어떤 종류의 재능, 특히 예술 분야의 재능이 동성애와 놀라울 만큼 자주 결합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우리는 아직 동성애에 대해 충분한 과학적 설명을 갖고 있지 않으므로, 바로 이 소비에트 문화 분야에서 성적 “평준화”가 가져올 위험을 신중히 저울질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스탈린 동지가 제17차 당 대회에서 한 보고의 한 대목을 인용하도록 허락해 주십시오.
“… 모든 레닌주의자는, 그가 참된 레닌주의자라면, 욕구와 개인 생활의 영역에서 평준화란 반동적 어리석음이라는 것을 안다. 그것은 어떤 원시적인 금욕주의 종파에나 어울릴 뿐, 마르크스주의적으로 조직된 사회주의 국가에는 어울리지 않는다. 모든 사람의 욕구와 취향이 똑같아야 한다거나, 모든 사람이 개인 생활에서 하나의 본보기에 따라 살아야 한다고 요구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
… 여기에서 사회주의가 평준화, 사회 구성원들의 욕구를 균등화하고 획일화하는 일, 그들의 취향과 개인 생활을 획일화하는 일을 요구한다거나, 마르크스주의에 따르면 모든 사람이 같은 옷을 입고 같은 음식을 같은 양만큼 먹어야 한다는 결론을 내리는 것은, 속된 소리를 하며 마르크스주의를 비방하는 것이다.”
(스탈린, 『전연방 공산당(볼셰비키) 중앙위원회 사업에 관한 제17차 당 대회 보고』, 렌파르티즈다트, 1934년, 54~55쪽. 강조는 나의 것. 해리 화이트.)
제 생각에 스탈린 동지의 보고 가운데 이 대목은 제가 검토하는 문제와 직접 관련이 있습니다.
그러나 핵심은, 지금 그런 평준화를 추구한다 하더라도 의학적 방법으로도 법률적 방법으로도 달성할 수 없다는 점입니다.
제가 찾아간 두 정신과 의사가 거듭된 질문에 밀려 치료할 수 없는 동성애의 사례가 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을 때, 저는 이 문제에 대한 제 입장을 최종적으로 정했습니다.
뿌리 뽑을 수 없는 동성애라는 것이 존재함을 인정해야 합니다. — 저는 아직 이를 반박하는 사실을 만난 적이 없습니다. — 따라서 자본주의 사회든, 심지어 사회주의 사회든, 이런 소수가 존재하는 것은 불가피하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이 사람들의 고유한 특성을 이유로 형사책임을 지우는 일을 정당화할 길은 없습니다. 그 특성이 생겨난 데에는 그들 자신의 책임이 조금도 없으며, 설령 바란다 하더라도 바꿀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제가 이해하는 마르크스-레닌주의의 원칙에 따라 생각하려 한 끝에, 저는 법과 제 논리에서 도출된 결론 사이의 모순에 이르렀습니다. 바로 이 모순 때문에 이 문제에 관한 권위 있는 말씀을 듣고자 합니다.
공산주의자의 인사를 보냅니다!
해리 화이트
1934년 5월
제 주소: 볼쇼이 아파나시옙스키 5번지, 11호. 전화: 3-34-33.
스탈린의 메모
문서고로. 백치이자 타락한 자. 이오시프 스탈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