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를 10세의 손자로 정통왕조파가 「앙리 5세」로 받든 부르봉 본가의 마지막 왕위 요구자
1820년 튀일리궁에서 샤를 10세의 둘째 아들 베리 공작의 외아들로 태어났다. 아버지가 그가 태어나기 일곱 달 전에 암살당해 왕당파는 그를 「기적의 아이」라 불렀다. 1830년 7월 혁명 때 할아버지와 큰아버지가 그에게 왕위를 넘겼으나 하원은 루이 필리프를 왕으로 세웠고, 그는 가족과 함께 망명했다. 1844년부터 「앙리 5세」라는 이름으로 왕위를 요구했고, 그를 따르는 이들을 정통왕조파라 불렀다. 빈 남동쪽 프로스도르프 성에 살았으며 자식이 없었다. 1870년 뒤 왕당파가 국민의회 다수를 차지하고 오를레앙파도 그를 밀었지만, 삼색기를 버려야만 왕관을 받겠다고 버텨 1873년의 왕정복고도 무산되었다. 1883년 프로스도르프에서 죽었다.
다른 이름: 샹보르 백작 · 앙리 5세 · 보르도 공작 · 앙리 샤를 페르디낭 마리 디외도네 다르투아
주요 활동과 소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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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4–1883
독립 활동대표
정치·당 지도
경력 연표
- 18307월 혁명 뒤 망명
- 1844–1883정통왕조파의 왕위 요구자 「앙리 5세」
- 1873왕정복고 무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