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리 롤탕기

Henri Rol-Tanguy

파리 봉기를 지휘한 공산주의 레지스탕스 지도자

1944년 8월 21일, 그는 파리 전역에 바리케이드를 세우라는 명령을 게시했다.

앙리 롤탕기는 금속 노동자 출신의 프랑스 공산주의자이자 국제여단 참전자로, 스페인 내전과 반나치 레지스탕스에서 군사적 경험을 쌓았다. 그는 1944년 8월 파리 지역 프랑스 국내군(FFI) 사령관으로서 동맹군이 입성하기 전에 봉기를 조직하고 지휘했다. 그의 활동은 노동운동의 조직 경험과 무장 저항을 결합해 수도 해방을 내부에서 추진한 사례였다. 전후에는 군과 프랑스 공산당에서 활동하며 레지스탕스의 독자적 역할을 공적으로 옹호했다.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

냉전기 군내 공산주의자와 참전자 조직 활동

전후 롤탕기는 군 계급을 유지한 채 1947년 4월 국방장관 프ран수아 비유의 군사실에 배속되었다. 1948년부터 1951년에는 르망 지역의 참모 3처장을 지냈으나, 1952년부터 1962년까지는 베르사유의 격리 병력 대기소(데포 중앙 데 지솔레)에 사실상 배치 없이 남겨졌다. 프랑스 공산당원이라는 이유로 군이 줄 수 있었던 자원도 주어지지 않았지만, 그는 1962년 퇴역할 때까지 독자적으로 전략·전술 강좌를 열었다. 같은 해부터 1987년까지는 프랑스 공산당 중앙위원을 지냈고, 1979년까지 일부 도(道) 조직을 맡았다. 그는 레지스탕스 참전자 전국협회(ANACR)와 스페인 공화국 프랑스 의용병 동지회 회장을 맡아 레지스탕스와 국제여단의 독자적 역할을 공적으로 옹호했다. 2002년 사망 뒤 9월 13일 자크 시라크 주재로 앵발리드에서 국가적 추도가 거행되었다. 다만 이 시기 그의 행보가 일관되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1980년 3월『레크스프레스』가 조르주 마르셰의 독일 강제노동 이력을 문제 삼자 그는 마르셰를 공개적으로 옹호했고, 1991년 10월에는 샤토브리앙 학살 추도식 사회를 마르셰가 맡지 말 것을 요구한 옛 레지스탕스들의 청원에 서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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