텔만·노이만과 함께 「사회파시즘」 노선을 이끈 독일 공산당 정치국원
방앗간 집 아들로 선반공이 되어 1897년 사회민주당과 금속노조에 들어갔다. 1917년 독립사회민주당 창당에 참여했고 1920년 당 좌파와 함께 독일 공산당으로 옮겨 1933년까지 중앙위원·제국의회 의원을 지냈다. 1924년 잠시 당 의장을 맡았고 1926년 코민테른 집행위원이 되었다. 1929년 이후 텔만·하인츠 노이만과 함께 당을 이끌며 사회파시즘론과 혁명적 노조 반대파 노선을 폈으나, 1932년 노이만과 함께 분파 투쟁에 져 밀려났다. 모스크바 망명 중 1937년 체포되어 1939년 총살되었다.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 1897사회민주당과 독일 금속노조에 가입했다.
- 1917독립사회민주당 창당에 참여했다.
- 1919.02만하임 평의회 공화국 선포를 함께 주도했다.
- 1920–1933독일 공산당 중앙위원, 제국의회 의원.
- 1924잠시 당 의장을 맡았다.
- 1926코민테른 집행위원이 되었다.
- 1930반파시즘 투쟁동맹 의장을 맡았다.
- 1932.10분파 투쟁에 져 중앙위원회 서기국에서 물러났다.
- 1937.05.15모스크바에서 체포되었다.
- 1939.03.07사형 선고를 받고 같은 날 총살되었다.
텔만·노이만·레멜레 지도부와 사회파시즘 노선 (1929~1932)
레멜레는 1924년 당 정치국원 16명 가운데 1929년까지 텔만과 함께 자리를 지킨 단 두 사람 중 하나였다. 1928년 비토르프 사건으로 「조정파」가 밀려난 뒤 그는 에른스트 텔만, 하인츠 노이만과 함께 독일 공산당의 실질적 지도부를 이루었다. 이 지도부는 1931년까지 스탈린의 지지를 등에 업고 혁명적 노조 반대파(RGO)와 사회파시즘론, 곧 사회민주당을 주적으로 삼는 「극좌」 노선을 폈다. 1930년부터 레멜레는 반파시즘 투쟁동맹 의장을 맡았지만, 당의 공격 방향은 여전히 사회민주당 지도부를 향했다.
트로츠키는 1932년 『다음은 무엇인가?』에서 「텔만, 레멜레, 노이만」을 하나로 묶어 비판했다. 그는 사회민주당 노동자에게 공산당 지도부를 미리 인정하라고 요구하는 최후통첩주의가 반파시즘 통일전선을 가로막는다고 보았다.
그러나 1931년 스탈린이 레멜레·노이만의 당내 반대자 쪽으로 돌아서면서 두 사람은 분파 투쟁에서 졌다. 레멜레는 1932년 8월 모스크바로 소환되었고 10월 중앙위원회 서기국에서 물러났으며, 1933년 11월에는 중앙위원회와 정치국에서도 쫓겨났다. 1934년 1월에는 노이만과 함께 당을 쪼개려 했다는 비난을 받았다. 대숙청이 시작되자 1937년 5월 체포되었고, 아내와 아들도 붙잡혔다. 그는 1939년 3월 7일 사형 선고를 받고 같은 날 총살되었으며, 1988년 소련 법원이 그를 복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