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9년 1월 근위기병소총사단 분대를 이끌고 카를 리프크네히트를 사살한 자유군단 장교
1919년 1월 15일 그가 지휘한 근위기병소총사단 분대가 베를린 티어가르텐에서 카를 리프크네히트를 사살했고, 그는 군사 법정에서 무죄로 풀려났다.
바젤에서 역사가의 아들로 태어나 1907년 제국 해군에 들어갔고 1차 세계대전 동안 어뢰정에서 복무했다. 11월 혁명 초 혁명 좌파에 맞설 해군 장교들을 모았고, 이들은 최대 자유군단인 근위기병소총사단에 편입되었다. 1919년 1월 15일 파프스트의 지시로 그가 이끈 분대가 베를린 티어가르텐에서 카를 리프크네히트를 사살했다. 군사 법정은 「도주 시도」 주장을 받아들여 그를 무죄로 풀어 주었다. 스웨덴으로 달아나 해군 비밀 업무를 하다 파시스트에게 무기를 밀반입해 추방되었고, 1933년부터 코펜하겐에서 첩보망을 꾸리다 1938년 발각되었다. 2차 세계대전 중 방첩국에서 일했고 1967년 함부르크에서 숨졌다.
다른 이름: 호르스트 구스타프 프리드리히 폰 플루크하르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