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오쩌둥의 비서에서 「역사결의」 기초자로, 1980년대 보수파의 대표 이론가
장쑤 옌청 출신으로 1932년 중국공산당에 들어가 베이핑의 항일 학생·노동 운동을 이끌었다. 1941~1969년 마오쩌둥의 비서로 일했고, 건국 뒤 신화사 사장과 중앙선전부 부부장으로 《인민일보》를 직접 다듬었으며 1951년 『중국공산당의 30년』을 썼다. 1956년 정치국 후보위원이 되었다. 문화대혁명 때 박해받았다가 복권되어 1977년 중국사회과학원 초대 원장이 되었고, 1980년 「건국 이래 당의 약간의 역사 문제에 관한 결의」의 기초를 맡았다. 1980년대에는 덩리췬과 함께 당의 대표적 보수 이론가로 「인민성」보다 「당성」을 앞세웠고, 소외론을 비판하며 1983년 「정신오염 청소」 운동을 이끌었다. 1992년 죽었다.
다른 이름: 호교목
주요 활동과 소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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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2–1992
중국공산당대표
정치·당 지도- 마오쩌둥 비서·당 이론가1941–1987이념·선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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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7–1982
중화인민공화국 국가기관중국사회과학원 원장
학술·연구
경력 연표
- 1932중국공산당 입당
- 1941–1969마오쩌둥의 비서
- 1949신화사 사장, 중앙선전부 부부장
- 1951『중국공산당의 30년』
- 1956정치국 후보위원
- 1977중국사회과학원 초대 원장
- 1980「역사결의」 기초 책임
- 1983「정신오염 청소」 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