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바에 R-12 미사일을 배치한 51 로켓사단장
헬기에서 쿠바 중서부를 내려다본 스타첸코 소장은 깨달았다: 이 정도 야자수로는 90마일 북쪽 초강대국의 눈을 피할 수 없다.
소련 전략로켓군 소장.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 당시 제51로켓사단을 지휘, 36기 R-12 핵미사일을 쿠바에 배치하고 10월 20일 전투 태세를 완료했다. 사후 보고서에서 정찰 부족과 현지 조건 무시 같은 참모본부의 '아나디리' 계획 결함을 솔직히 기술했다. 이후 페름 고등군사공병학교장과 우주추적센터장을 지냈다.
주요 활동과 소속
- 1942–1945 군사·지휘 · 소련 · 군사 · 국방
경력 연표
- 1936–1939치칼로프 대공포학교 사관생도
- 1942–1945서부·북부전선 대공포대대장
- 1957–1961제61대공사단장 → 참모본부 아카데미
- 1961–1962제43로켓사단장 (롬니)
- 1962제51로켓사단장, 아나디리 작전 (쿠바)
- 1963–1967제5독립로켓군단 부사령관 (키로프)
- 1967–1971페름 고등군사공병학교장
- 1971–1976제153우주추적센터장
관련 역사 사건
쿠바 미사일 위기와 '아나디리' 작전
스타첸코의 이름을 역사에 남긴 것은 1962년 9~10월 쿠바로의 비밀 파견이다. 제43로켓사단장으로 재직 중이던 그는 쿠바 배치를 위해 참모본부가 편성한 제51로켓사단의 지휘관으로 임명되어, R-12 중거리 로켓 36기를 섬에 전개하는 '아나디리' 작전의 현장 책임자가 되었다. 미국의 해상 봉쇄로 로켓과 지원부대 수송이 일부 차단되는 악조건 속에서도 사단은 예정보다 앞당겨 전투 태세를 갖추었고, 10월 20일에는 핵탄두 장착 로켓이 발사 태세에 들어갔다. 이는 카리브해 위기가 정점에 달하던 시점이었다.
스타첸코가 오늘날 연구자에게 특히 소중한 것은 그가 남긴 사후보고서 때문이다. 1962년 12월부터 1963년 1월까지의 사단 행동을 기록한 이 보고서에서 그는 작전을 솔직히 평가했다. 사전 정찰의 부족, 쿠바 현지 지형과 조건에 대한 참모본부의 무지, 위장의 실패 같은 계획의 결함을 숨기지 않고 적시한 것이다. 1962년 7월 헬기에서 쿠바 중서부를 답사하던 그가 품은 의문, 곧 '이 정도 야자수로는 북쪽 150킬로미터의 초강대국 정찰을 피할 수 없다'는 판단은 보고서에서 체계적 비판으로 다듬어졌다.
위기 이후 스타첸코는 전략로켓군의 간부로 계속 복무했고, 퇴역을 앞두고는 UR-100K 로켓 복합체의 비행시험을 주관하는 국가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대륙간탄도미사일 개발의 검증에 참여했다. 쿠바에서의 51사단 지휘는 그의 군 경력 전체에서 가장 짧았지만, 냉전이 핵전쟁 직전까지 갔던 순간 한 소련 야전장교가 남긴 가장 솔직한 1차 증언이라는 점에서 오래 기억된다.